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뉴스가 매일 쏟아지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가 싸우면 미국이 이기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이라크가 패하고 후세인이 물러나면 중동에 평화가 오고 미국이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될까.
사태가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후세인을 쫓아내려면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중동에 대규모 반미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얻어맞은 사람들의 저항이다.
알카에다는 미국에 대해 더욱 극렬한 테러를 자행할지도 모르며 이들의 행위가 영웅시되고 조직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9.11 테러사건에 직접 관계된 19명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미국을 증오하는 세력이 이라크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라크가 최후의 수단으로 독개스나 세균전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로는 후세인이 세균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으나 그가 막판에 미국에 몰려 생명에 위협을 받으면 무슨 짓을 할지 예측불허다.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나오면 세균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는 미국인이나 미군의 엄청난 피해가 따른다. 세균전 할 계획이 없는 이라크를 부시가 건드려서 세균전을 하게 만드는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참전이다.
미국의 공격을 받게 되면 이라크는 이슬람 국가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며 이때 독개스나 세균 무기를 사용하면 이스라엘이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반격하는 날엔 중동 이슬람국 전체와 미국과 이스라엘이 싸우게 되고 잘못하면 크리스찬과 모슬림의 세계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부시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계속 만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부시가 이라크 공격을 감행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앉아서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해 화근을 미리 제거한다는 `부시 독트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나 어느 적성국의 독재자가 미국을 공격했을 때 대책을 강구하면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이 부시 독트린의 요점이다.
부시 독트린은 지난해 6월1일 부시의 웨스트포인트 육사 졸업식 연설에서 잉태되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이 대량학살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가능성 단계에서 이를 미리 제거해야 한다.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9.11 참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상대방이 계획 단계에 있으면 우리는 먼저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격적인 국방정책이다. 냉전시대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미국의 `나 홀로` 정책이다. 9.11 이후 미국의 방위정책은 완전히 성형수술을 했다.
각종 국제조약에 묶여 있는 것을 귀찮아하고 테러리스트를 공격하는데 유엔과 이웃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지겨워하고 있다. 우방의 동의 없어도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혼자서라도 공격을 강행하겠다는 것이 부시 독트린의 배경이다. 제2의 9.11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웃국가들로부터 비난받는 것 정도는 각오가 되어있다는 초강경 자세다.
바그다드에 알라시드라는 A급 호텔이 있다. 이 호텔에 들어서면 누구나 부시의 아버지 얼굴을 짓밟고 지나가게 된다. 홀 바닥에 부시(시니어)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TV 뉴스에 유엔 감시단원이 부시 얼굴을 밟지 않으려고 홀을 돌아가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부시 일가와 후세인 사이에는 개인적으로 얽힌 감정관계도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려는 것은 후세인이 언젠가는 핵무기나 화학무기를 테러리스트에게 공급할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느니 욕먹더라도 지금 뿌리 빼야 한다는 것이 부시 정부의 자세다. 예방전쟁이다. 그래서 우방국들이 동참을 꺼려하고 있다.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필수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속전속결`이다. 전쟁이 길어지는 날엔 유가가 계속 치솟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며 이슬람 국가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반미데모가 벌어져 미국이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
이철 주필 chullee@koreatimes.com
<미주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