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부자 사장과 가난한 사장

정민정 기자 <정보산업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한해에 10억원 이상 벌어본 적이 없습니다.” 최근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선임된 한 중소기업체 사장의 말이다. 조합이 달랑 3명의 직원으로 운영될 정도니 이 업종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는 “조합회원사가 2,000여개에 달하지만 대부분이 한해 매출이 억단위를 넘지 못한다”면서 업계 현안 및 어려움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반면 또 다른 신임 조합 이사장의 경우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연간 매출이 수백억원에 달한다. 그는 워낙 바쁜 나머지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기자가 “무척 바쁘신가 보네요”라고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요즘 날이 좋아 운동(골프)을 하다 보니 조합에 들르기가 쉽지 않네요”라고 답했다. 그는 “아직까지 모든 회원사를 만난 게 아니라서 업계 현안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공허한 얘기만을 되풀이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204개 협동조합 및 연합회로 구성돼 있다. 올해는 60개가 단체장 선거를 치렀고 이 가운데 20여곳이 새로운 수장을 맞았다. 사명감이 없으면 조합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 게다가 오는 2007년부터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되는 만큼 중소기업들의 걱정은 태산 같다. 아직까지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부터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형편이다. 신임 조합장 연쇄 인터뷰를 통해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연간 매출이 10억원도 안되는 업체의 ‘가난한’ 사장이 수백억원 이상 버는 ‘부자’ 사장에 비해 업계 사정을 속속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난한 사장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현장에서 많은 문제에 부딪치다 보니 현안을 더 잘 파악할 수도 있다. 조합 살림을 맡았다면 현안 해결에 매달리는 게 정상이다. 이사장 취임 이후 두달이 지나서도 업계 현안에 대한 해결 방안조차 고민하지 않는다면 조합으로서는 큰 불행이다. 협동조합은 동종업체들이 다 함께 잘살아보자고 만든 단체다. 이사장도 이런 취지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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