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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현대자동차 통상임금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1심 선고는 지난 2013년 말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른 판결이라는 것이 산업계의 분석이다.
이날 전체 조합원의 11%에 해당하는 근로자가 받는 상여금만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서 회사의 추가 부담 규모는 100억원 안팎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의 일부승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사측이 승리한 싸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가 곧바로 항소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돼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진통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 기준 충실히 해석해 일부만 인정=2013년 대법원은 모든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이라도 △상여금 지급기간 동안 특정 일수 이상 근무해야 지급하는 경우 △퇴직자에게 근무일수만큼 일할지급하지 않는 경우 등은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이 같은 현대차 소속 근로자들임에도 상여금 지급 기준에 따라 '분리판결'을 내린 것은 이 같은 대법원의 가이드라인과 궤를 같이한다.
현대차 조합원 중 89%(4만6,000여명)가 적용 받는 상여금 시행 세칙에는 '두 달 동안 15일 이상 근무한 경우에만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규정 때문에 이들 근로자는 법원 판결에서도 상여금의 고정성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법원이 소송을 제기한 23명 중 5명(영업·정비 부문 근로자)이 지급 받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을 내놓은 것은 이들 근로자가 적용 받는 상여금 지급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업·정비 부문 근로자들은 1999년 현대차·현대정공·현대자동차서비스의 3사 합병 당시 현대차서비스에서 현대차로 넘어온 근로자다. 이들의 상여금 지급 기준이 현대차의 기존 근로자와 다른 것은 합병 전 회사의 세칙을 그대로 적용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전체로는 조합원의 11%가량인 5,700명에 해당된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즉 3년치 소급분 지급 여부 역시 서울중앙지법은 대법원의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초래된다거나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5명 중 2명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차액과 퇴직금 중간정산액 지급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통상임금은 초과(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산정하는 기초가 되는데 법원이 나머지 3명의 경우 통상임금 범위가 넓어지더라도 초과근무에 대한 근거가 불명확해 회사가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이 없다고 봤다.
◇사측 "사실상 승소, 논쟁 일단락될 것"…노조 반발로 분쟁 불씨는 여전=이날 판결로 사측은 일단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인건비 부담 규모가 대폭 줄었을 뿐 아니라 오는 3월까지 논의를 이어가기로 한 '임금체계 및 통상임금 개선위원회'에서도 어느 정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사실상 사측이 승소한 판결"이라며 "통상임금 논쟁이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는 기준점이 마련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우선 노조의 항소 가능성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임금체계개선위원회가 노조의 버티기로 의미 있는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할 경우 통상임금 이슈를 둘러싸고 노사는 수년간 법정 공방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같은 회사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한 줄 규정' 때문에 근로자마다 통상임금 범위가 달라진다는 점도 법적 정당성 여부와 별개로 사측으로서는 부담이다.
황기태 현대차 노조 대외협력실장은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결정된 것은 없지만 당연히 항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울러 그룹 계열사인 기아자동차 근로자 역시 고정성을 충족하는 상여금을 받고 있다는 점도 앞으로 분쟁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기아차는 무려 2만8,000여명이 소송을 제기해 1심 선고를 기다리는 중이다.
◇재계·노동계 반응 엇갈려=이번 판결은 만만치 않은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지니고 있어 현대차 노사는 물론 재계와 노동계 전체의 이목이 집중됐다. 우선 재계는 대법원 가이드라인을 준수한 판결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소급분 지급의무를 사측에 부과한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공식 논평을 내고 "그동안 하급심에서 대법원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통상임금의 고정성을 명확히 했다"며 "다만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부분은 기업의 인력운용에 대한 부담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민주노총 측은 "실질적으로는 극소수에게만 예외적으로 적용된 세칙을 근거로 절대다수 근로자의 임금을 결정짓는 것은 '재벌 금고 지키기'라고 볼 수밖에 없는 판결"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