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통계의 함정

통계는 현상을 숫자로 나타내는 작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년 전인 고대 로마와 중국 전한 시대에 정확한 징세와 징병을 통해 보다 강력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고대 로마에서 인구조사를 일컫던 `센서스`라는 말이 아직도 사용되는 것을 보면 통계의 중요성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통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앞날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다. 지나온 궤적이 앞으로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연말연시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보는 토정비결도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통계적으로 묶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삼국지에서 가장 호쾌한 장면 중 하나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적벽대전도 마찬가지다. 제갈공명이 조조의 100만 대군을 적벽에서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통계적으로 한겨울에도 남풍이 부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변수에 의해 움직이는 주식시장도 각종 통계가 지배한다. 오히려 어느 분야보다도 통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산타랠리ㆍ1월효과ㆍ서머랠리ㆍ주말효과ㆍ월요일효과 등은 모두 통계에 근거해 나온 말이다. 투자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기술적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증시의 심장부인 뉴욕 월가에서는 1,000여명의 수학자들이 통계이론에 근거한 `과학적 투자`를 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통계를 잘 다루는 수학자들이 투자게임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술적분석을 통해 투자자료를 제공하는 차티스트들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얼마 전에 원숭이들의 랜덤 투자가 수학자들의 과학적 투자에 비해 수익률이 높게 나왔던 실험은 통계의 효용가치에 대한 의문을 준다. 수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각종 통계를 분석해 고른 종목의 수익률이 원숭이가 아무 생각 없이 찍은 종목보다 못했다는 것이 허무하기 그지없다. 수학자들이 원숭이보다 못했던 이유는 통계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 통계가 부정확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통계에 의존해 `통계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항상 새로운 일로 채워지지만, 이전의 궤적을 연장하려는 통계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자들이 원숭이보다 못한 수익률을 올렸다고 해서 통계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통계는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인간이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창이기 때문이다. <채수종 증권부 차장 sjcha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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