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성사될 것으로 기대됐던 ‘탱크’ 최경주(36ㆍ나이키 골프)와 ‘호랑이’ 타이거 우즈(30ㆍ미국)의 매치플레이 격돌이 무산됐다. 우즈가 9홀 플레이 만에 무려 8홀 차의 대회 신기록 승리로 가볍게 32강전에 진출했지만 최경주는 2홀 남기고 3홀차로 완패해 3년 연속 첫 날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32강전에서 만나도록 돼 있었던 두 선수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 이 대회는 월드골프시리즈 액센추어 매치플레이챔피언십. 총 상금 750만 달러의 이 대회는 2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의 라코스타 골프장에서 시작됐다.
지난 2003년 32강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최경주와 우즈의 이번 대회 플레이는 초반부터 크게 달랐다. 매치 플레이 경험이 적은 최경주는 호주의 로버트 앨런비를 만나 첫 홀부터 기선을 제압당했다. 앨런비가 버디를 뽑아 바로 앞서가기 시작한 것. 최경주는 4번홀 버디로 동률을 만들었지만 5번홀 보기로 다시 뒤처졌고 8번홀에서도 져 2홀차로 처졌다.
9번홀에서는 앨런비가 보기를 해 홀 차를 줄였으나 12번홀에서 앨런비가 버디, 13번홀에서는 최경주가 보기를 하면서 3홀차까지 벌어졌다. 이후 최경주는 번번이 버디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단 한번도 리드해보지 못한 채 16번홀에서 무릎을 꿇었다.
우즈의 경기는 이와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토마스 비욘이 어깨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는 바람에 막판에 합류한 세계랭킹 68위의 스티브 에임스를 만난 랭킹 1위 우즈는 첫 홀부터 내리 6개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6홀만에 6홀차로 앞서가면서 에임스의 혼을 뺐다. 주눅 든 에임스는 7번홀에서 보기를 하면서 7홀차로 뒤떨어졌고 또 8번홀에서 우즈가 버디를 하는 바람에 ‘회생 불능’ 상태에 빠졌다. 우즈는 9번홀에서 에임스가 다시 보기를 한 덕에 9홀차로 달아났다가 10번홀을 파로 비기면서 2시간 만에 싱겁게 첫날 경기를 마쳤다.
첫 홀부터 내리 9개홀을 따내면서 9홀차의 승리를 기록한 것은 이 대회 신기록이다. 주니어 시절부터 수없이 매치 플레이를 치렀던 우즈도 “이런 대승은 생전 처음”이라며 놀라워 했다. 외신은 우즈가 아마추어 시절이었던 지난 94년 퍼시픽 노스웨스 선수권 대회때 36홀 매치 플레이 경기에서 11번홀까지 10홀을 앞서는 압승을 거둔 적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세계랭킹 2위 비제이 싱(피지)도 그래미 맥도웰(잉글랜드)를 5홀차로 가볍게 따돌리고 2회전에 안착했고 랭킹 3위 레티프 구센(남아공) 역시 폴 브로드허스트(잉글랜드)에게 5홀차 대승을 거둬 1회전을 통과했다. 필 미켈슨(미국)도 찰스 하웰3세(미국)를 2홀차로 제압했고 지난해 우승자 데이비스 톰스(미국)는 이안 폴터(잉글랜드)와 연장전까지 벌이는 접전 끝에 32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변도 적지 않았다. 세계랭킹 5위인 어니 엘스(남아공)는 62번 시드를 받은 노장 베른하르트 랑거(독일)에 1홀차로 져 다시 한번 초반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6번 시드의 짐 퓨릭(미국)은 60번 시드의 잭 존슨(미국)에게 졌고 지난해 US오픈 우승자인 마이클 캠벨은 죠프 오길비(호주)에게,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프레드 커플스(미국)는 숀 오헤어(미국)에 패했다.
한편 우즈가 2시간 만에 숙소로 돌아간 데 비해 스콧 버플랭크(미국)와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는 무려 6시간 동안 26홀까지 치르는 대 접전을 치러 대회 사상 최장홀 연장 기록을 세웠다. 버플랭크는 그나마 1홀차로 이기며 32강전에 진출, 그나마 위안을 받았지만 웨스트우드는 3만5,000달러의 상금만 챙긴 채 짐을 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