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시론] 유휴설비 북한에 이전하려면

鄭哲朝(산업은행 부총재)최근 국내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는 있지만 아직 놀고 있는 공장설비가 10조∼2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동안 IMF 체제하에서 기업들이 극심한 불경기와 자금난을 겪으면서 안타깝게도 많은 제조업체의 공장설비가 녹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채권은행의 입장에서는 채권회수에 지장만 없다면 가급적 공장의 재가동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는데, 유휴설비의 정리는 신규 설비투자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침 정부에서도 국내의 유휴설비를 활용하기 위하여 쓸만한 기계설비를 동남아에 수출하거나 北韓에 반출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고 있다. 국내 유휴설비를 북한에 이전함으로써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북한내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하여 북한의 산업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도 돕고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러한 방식으로 남북한 업종간의 경제교류를 도모한다면 북한 산업설비를 근대화하여 남북 경제협력을 보다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분단 이후 크게 달라진 용어의 상호이해와 통일을 기하는 성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채권은행들도 여러 가지 실현가능성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이 문제를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담보로 잡았던 상당 부분의 공장 기계기구 중에는 이미 성업공사에 매각한 것이 많고, 설령 남아 있다 하더라도 담보권을 설정해 놓은 것은 1개 채권금융기관 단독으로 담보를 해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 기계기구가 당초 금융기관에 담보권을 설정해 준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드물고, 증설·공정개선 등을 하면서 이것저것 추가하고 리스 임차한 것이 많아 권리관계가 복잡해진 것도 커다란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채권금융기관이 담보를 해제해준다고 해결되기보다는 제3 채권자들까지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 법률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정부에서 유휴설비 활용방안을 추진한다면 공적 기관, 예컨대 중소기업진흥공단이나 성업공사에서 담보로 제공된 공장설비를 현금 또는 채권을 주고 사들이는 것이 보다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들 기관은 담보관계가 정리된 공장설비를 종합무역상사 등을 통해 해외 수출하거나 북한에 반출함으로써 그 대금을 즉각 또는 연차적으로 회수하면 된다. 유휴설비의 매각·유통을 활성화하려면 판매성과를 원소유자와 채권자 등 이해당사자가 나눠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방안이 보다 구체화된다면 남한의 공장설비를 설치할 공업단지를 조성하고 도로, 철도, 항만, 전력, 수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 경제교류에 있어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철도, 도로 등의 육상운송로를 새로 개척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른 국내 경제에의 파급효과는 종전의 경협사업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장설비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술, 인력, 자금 등 생산요소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투자보장협정 등을 통하여 국내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이 보장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와 같이 유휴 공장설비를 북한에 이전하는 것은 민족통일의 과업을 달성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이러한 사업이 북한측에도 이롭고 도움이 된다는 상호신뢰의 바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작년 11월부터 개시된 금강산 관광사업이 현재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거니와, 남북한 상호간에 유익한 사업을 발굴하여 이를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우선적으로 경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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