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뒤늦은 극약처방(사설)

정부가 마비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의 비상진화에 나섰다. 10일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의 핵심은 서울소재 대형종금사 5개에 업무를 정지조치하고 은행 신탁계정에 기업어음(CP)할인업무를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종금사 5개를 추가로 업무정지시킨 것은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다. 금융시장 마비의 원인 제공자로 종금사가 지목되어 왔다. 종금사를 수술하지 않고서는 금융공황으로 발전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때문이다. 은행의 CP할인업무 허용은 종금사 업무정지에 따른 보완책이다. 은행이 종금사 업무를 넘겨받은 것이다. 그동안 기업과 종금사·은행으로 이어지는 단기자금 흐름의 고리가 이제 종금사를 빼고 기업과 은행이 직거래하는 형태가 됐다. 이번 대책으로 기업은 내년 1월 말까지는 종금사의 빚독촉에서 벗어나 한숨 돌릴 수 있고 종금사들의 콜자금 수요가 사라져 자금시장은 그만큼 여유가 생기게 됐다. 증시 안정책으로 내놓은 유동성 지원과 외국인 투자한도 확대의 조기시행도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1차로 9개 종금사에 업무정지 조치를 취한 이후 금융경색은 더욱 심화되었다. 부실 금융기관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가 기업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금융과 기업이 공멸할 수 있는 위기사태로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은 시장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불길이 확대되어서야 진화에 나서는 꼴이다. 그동안에도 번번이 실기해왔다. 초기에 고칠 수 있는 병을 찔끔찔끔 함량미달의 처방으로 오히려 병세를 악화시켰다. 그러다보니 비상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충격이 크고 부작용이 우려된다. 금융경색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업무정지를 받은 종금사가 신규대출을 할 수 없지만 대출회수에 안간힘을 쓸 게 분명하다. 종금사 업무를 넘겨받은 은행도 제 코가 석자인지라 CP를 기대한 것처럼 연장해줄지 의문이다.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태에서 정부의 확고하고 꾸준한 실천의지와 지도·감독이 뒤따르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금융기관도 자금중개기능을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이 동시에 보태져야 한다. 대통령의 긴급명령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바로 읽지 못하면 위기는 해소되지 않는다. 종금사 추가 업무정지 조치는 금융업 재편 가속화의 신호다. 구조조정을 미적미적 미룰 일이 아니다. 자생력 있는 종금사를 조속히 회생시켜 금융기능의 정상화와 자금시장 안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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