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귤껍질 쉽게 벗기는 기술/허두영 기자(해외 과학가 산책)

귤과 바나나는 게으른 사람들의 과일이다. 먹기 위해 씻을 필요도 없고 칼로 껍질을 깎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그냥 손으로 껍질을 벗겨 먹으면 된다. 그러나 이 간편한 과일들의 껍질을 벗기는 것조차 귀찮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같다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국립농업연구소 산하 과일연구소의 조 브뢰머·밥 베이커박사팀은 최근 귤, 오렌지, 자몽따위의 감귤류과일을 효소로 만든 용액속에 담가 껍질을 쉽게 벗기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펙티나제라는 효소로 만든 용액속에 감귤류과일을 담가 과육이 껍질과 달라붙게 아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펙틴이라는 고분자성분을 분해해 흐물흐믈하게 만든다. 펙티나제용액은 약 0.1%의 아주 묽은 농도로도 충분하다. 이어 귤들을 진공장치속에 30분정도 넣어두면 귤속에 남아있는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간다. 진공속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부풀어 오른 귤이 제 모양을 갖추려면 2∼3분정도 기다리면 된다. 이렇게 처리된 귤은 아무리 무딘 손도 10초안에 껍질을 벗길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게 된다. 또 환경은 물론 인체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다. 펙티나제는 빵에 생기는 검은 곰팡이와 같은 천연곰팡이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직접 먹어도 될 정도로 인체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 보호막을 잃어버인 귤은 상하기 쉽다. 보통 귤은 2달 넘게 보관할 수 있는데 비해 펙티나제용액으로 처리된 귤은 길어야 2주를 넘지 못한다. 또 오랫동안 그대로 두면 펙티나제용액이 과육속으로 스며들어가 못먹을 정도로 흐물흐물하게 된다. 따라서 진공장치속에서 끄집어내는대로 겁질을 당장 벗겨야한다. 이렇게 「벌거벗은」귤은 특수처리된 포장지에 싸여 수퍼마켓으로 공급된다. 게으른 사람은 이 포장지를 뜯으면 바로 귤을 먹을수 있다. 과일도 이제 인스턴트식품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씨없는 수박, 씨없는 포도에 이어 이제 벌거벗은 귤과 오렌지를 먹을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은 속은 멀쩡한데 모양이 못생겼거나 껍질에 상처를 입은 귤들을 시장에 내놓아 감귤류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소득을 높일수 있게 만들었다. 못생겼지만 맛이 좋은 귤들이 진가를 발휘할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특허는 미국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얼마든지 이 기술을 활용할수 있다. 현재 영국의 마크앤스펜서, 세일스베리, 테스코 3대 수퍼마켓이 벌거벗은 감귤류를 판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덴마크의 노보노르디스크사는 펩티나제용액을 「필짐(Peelzym)」이라는 상표로 공급하고 있다. 여하튼 수퍼마켓에서 벌거벗은 귤을 사먹는 게으른 사람들은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두고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아 청포도를 따먹으며 두 손을 함뿍 적시고 싶어하는 이륙사의 소박한 즐거움을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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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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