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방송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다채널전문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첫 유료방송이 시작됐던 지난 95년, 문화예술채널이란 게 있었다. 공연ㆍ전시ㆍ예술영화ㆍ전통문화 등 말 그대로 ‘문화’와 ‘예술’을 풍요롭게 접할 수 있는 채널이다. 지금은 없어졌다. 그 후 11년, 초창기 29개 비디오채널에서 시작했던 유료방송은 현재 비디오채널 200개, 오디오채널 211개, 데이터채널 65개로 커졌다. 그러나 200개의 비디오채널 중 영화채널이 43개, 오락채널 30개, 스포츠채널 8개인 반면 문화예술채널은 고작 2개뿐이고,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소외계층, 시민엑세스, 사회복지 등의 채널을 모두 포함해도 공익성 채널은 전체 비디오채널의 5%를 채 넘지 못한다. 방송은 엔터테인먼트산업이고 ‘즐기는’ 매체 속성이 강하다. 영화ㆍ오락ㆍ스포츠에 인기가 집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청률이 높으면 수신료 수입, 광고 수입도 증가하고 기업에는 이윤 확대라는 단 열매를 가져다준다. 그렇다고 모든 사업자가 단 열매만을 좇는다면 우리 방송시장은 어떻게 될까. 건강한 성장에 적신호가 들어올 것이다. 유료방송 도입 초기, 정부가 영화ㆍ스포츠ㆍ오락ㆍ음악과 같은 인기 장르뿐만 아니라 교양ㆍ교육ㆍ문화예술ㆍ공공 등과 같은 비인기 장르를 강제 규정해 채널 승인제를 시행했던 것도 균형 있는 시장 발전이라는 명분에 따른 것이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방송산업도 한때 어려웠지만 시장은 계속 컸고 2001년 채널등록제가 시행됐다. 보도전문ㆍ홈쇼핑ㆍ종합편성 등 3개 장르를 제외한 나머지 장르는 일정 요건만 갖춘 사업자라면 누구나 방송위원회에 등록 절차를 거쳐 사업을 할 수 있다. 시장의 문은 열렸지만 살아남은 자에게만 의미 있는 방송시장에서는 결국 영화ㆍ스포츠ㆍ드라마와 같은 대중성 높은 채널에만 사업자가 모이고 있다. 광고 매출이 연간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MPP(채널을 여러 개 사용하는 방송사업자)들도, 막강한 콘텐츠 공급자인 지상파 계열 채널들도 인기 가도에만 신경을 쓸 뿐 ‘돈 안되는’ 비인기 채널은 아무래도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뜻이 없고, 뜻이 있는 사람은 여유가 없는 꼴이다. 방송도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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