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도방지협약,절반의 성공/오용석 종금협회 경제연 연구위원(기고)

◎“경제위기” 인식공유 불구 자금시장은 혼란○“공황막자” 고육지책 자금시장이 혼미상태다. 이른바 「부도방지협약」이 시행된 지난 4월이후 어음수표에 의한 신용수수 및 지급결제 거래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협약 적용 대상인 진로 및 대농그룹의 발행어음은 거의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고 중소기업들은 이러한 연명의 기회조차 얻지못한 채 하루에도 수십개씩 쓰러져 간다. 과연 자금시장은 대란으로 이어질 것인가. 근래 기업의 자금수요가 감소한 것도 아니고 통화당국의 자금공급이 증가한 것도 아닌데 금리가 속속 하락하는 기현상이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처럼 느껴진다.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부도방지협약」 아닌 「부도촉진협약」이라면서 이를 폐지시켜야 한다는 의견까지 성급히 개진할 정도다. 사실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 촉진과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한 금융기관 협약」은 이름 그대로 기업의 부도를 촉진하기 위한 것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은행여신이 2천5백억원 이상인 대기업의 부실화시 일시적으로 부도를 유예하려는 것이다. 한보 및 삼미사태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가속화되던 상황에서 비록 고육지책이나마 실물경제의 공황적 위기를 막기 위한 타당한 긴급처방이었다. ○협약주체·내용 불명확 경제주체 모두가 더이상은 「국민경제호」를 침몰시킬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했음을 감안하면 이미 절반쯤은 성공했던 것으로 평가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경제적 공동이익의 존재가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협약 시행에 따른 부담을 기업과 금융기관간 또는 각 기업간 및 각 금융기관간에 구체적으로 분담시켜야 하는 지극히 어려운 과제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자금시장 혼미상태란 것도 결국 협약 주체 및 내용의 불명확성과 이로 인한 상호불신 및 부담 떠넘기기에서 촉발되었고 증폭되어 온 것이다. 먼저 「부도방지협약」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의 감시자 내지 심판자로 직접 나서야 한다. 당사자간 이해조정 등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소키 위한 기본규칙을 확립해야 한다. 현재의 「대기업 살리기」가 방만한 부실경영을 일삼던 「재벌총수 살리기」로 둔갑되지 말아야 한다. 진로그룹의 장진호회장이 이미 소각됐어야 할 주식임에도 온갖 구실로 담보용 포기각서조차 제출치 않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성공한 기업인은 상응하는 대접을 받되 실패한 기업인은 의당 경영에서 배제되는 자본주의적 경영철칙을 최대한 관철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소기업 등에까지 협약 적용을 확대하여 언필칭 「부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현실적 발상도 경계해야 한다. ○금융기관 부실화 우려 대상기업의 부도유예 여부가 주거래은행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 기업의 회생가능성 여부와는 관계 없이 부도 유예 자체가 은행 자신의 이익인 상황에서 권리남용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유예결정 직전의 담보확보 등 정보우위의 악용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고 이는 결국 금융기관간 불신 증대 및 신용질서 훼손으로 이어져 자금시장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의 자금부담 과다에 따른 부실화 내지 도산 가능성에 사전 대처해야 한다. 중소금융기관은 진로 및 대농의 부도 유예만으로도 이미 자기자본을 상회하는 자금압박을 받고 있고 비은행금융기관은 은행과는 달리 「최종적인 대부지원」을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신용질서의 위기상황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협약 시행이후 초래된 자금흐름의 급격한 변화를 파악하고 자금시장 불안정의 실체 내지 핵심요인을 찾아내야 한다. 기업어음의 최대매입처이자 사실상의 여신기관인 은행신탁 및 투신사 등이 최근 5대그룹 이외의 어음매입을 크게 회피하는 반면 잉여자금을 콜시장 등에 집중 운용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야 예를 들면 종금사의 어음 매출이 20일 현재 지난 3월말보다 약 5조원 감소했으나 어음할인은 2조1천억원 감소에 불과했고 결국 2조9천억원의 자금부족을 콜자금 등 단기차입증대로 메워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강경식 부총리가 수일전 종금사 등 일부 2금융권 사장들을 소집하여 자금시장 안정화에 각별한 노력을 당부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금융애로신고센터 설치나 행정보복적 특별검사방침 등 세부대책의 내용이 아쉽게도 한정된 현실인식에 머물러 구태의연할 뿐이다. 자금시장의 안정화라는 「나머지 절반의 성공」은 어음 등의 교환제시를 인위적으로 억제하기보다 어음시장의 수요공급 기반을 적극적으로 확충시킴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종금사 등의 차입행태를 「은행돈 갖고 장사하기」라거나 역으로 신탁자금의 최근 운용행태를 「종금사끼고 돈벌기」라는 식의 편향된 이해상충적 시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며 자금시장의 현안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할 따름이다. 자금거래는 물론 모든 상거래가 언제 어디서나 거래당사자의 상호의존 및 이익공유를 최소한의 기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오용석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