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활력회복과 대기업정책/시장원리 존중해야 경제가 산다

◎손병두­“수출 채산성 악화로 내수경기 침체 가중 기아 등 연쇄부도로 금융시장 불안 확산”/안병우­“상호지보 축소 등 차입경영 개선 총력 자금 직접조달 등 대안마련도 힘쓸것”/차동세“신바람 경영위해 각종규제 철폐 시급 고비용구조 개선 노동유연성 높여야”/김진동­“개방화 명분으로 지나친 자율 곤란 재계현안 교통정리 정부정책도 긴요”서울경제신문은 전경련과 공동으로 3일 전경련회관에서 현재의 경제난국 극복과 정부와 재계간 논란을 빚고 있는 대기업정책 등에 관한 바람직한 해법을 도출하기위해 「경제활력회복를 위한 대기업정책과제」란 주제로 지상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좌담회에는 김진동 서울경제신문주필의 사회로 손병두 전경련부회장, 안병우 재경원 제1차관보, 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현재의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시장경제에 맡겨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으나 ▲현재의 경기진단과 구체적인 처방 ▲대기업정책 ▲기업활력회복대책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의 개입여부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다음은 좌담회 토론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주> □토론자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 안병우 재경원 제1차관보 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사회:김진동 서울경제신문 주필 ▲김진동 주필=요즘 많은 사람들이 우리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경상수지 적자는 확대되고, 부도사태, 고금리속 금융기관의 부실화, 대외신용도하락 등으로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재계는 현 경제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손병두 부회장=좀처럼 불황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상반기에 성장율이 6%대를 기록했고, 수출도 물량면에서는 6%늘어나는 등 지표상으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설비투자가 마이너스성장을 하고, 재고는 여전히 쌓여있고, 내수경기는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출단가가 떨어지면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게 큰 문제입니다. 연쇄부도로 금융시장의 불안감도 확산돼 경기침체를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차동세원장=경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지난 상반기 경제실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올해 성장율은 6%대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지난 30년간 평균 8.3%의 성장율에 비하면 나쁜 편입니다. 그러나 6%정도의 경제성장율을 놓고 침체라면 선진국사람들이 『그게 과열이자 불황이냐』며 웃습니다. 내년에는 6.5∼7%로 회복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거시경제지표가 이런대도 경제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경상적자확대와 외채누적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김주필=당초 기업과 민간경제연구소에는 7월에 경기저점에 도달한후 완만하게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기아부도사태 등으로 경기회복세가 꺾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손부회장=기아사태는 심리적 파장도 크지만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심각합니다. 주력수출산업인 기아의 자동차수출이 48%감소하고, 1만8천개에 달하는 협력업체도 진성어음이 할인안돼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일부협력업체는 부도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이는 금융불안에 이어 금융기관의 부실초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건전한 대기업도 부도를 낼 수 있다는 부도도미노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김주필=그럼 재경원은 현재의 경기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안차관보=우리 경제에 대해 위기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위기상태라고 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봐요. 이는 올해 성장율이 6%대를 상회하고, 물가도 4%대에서 안정세를 유지하는 한편 국제수지적자도 지난해보다 70∼80억달러가 개선된 1백60∼1백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서 잘 나타납니다. ▲차원장=지금 우리는 가장 강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시대에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고통에 너무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차관보=그렇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거시경제지표 등 펀다멘탈(Fundamental)은 나쁜 편은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연구기관인 DRI도 한국경제의 푼다멘탈은 여전히 건전하며 통화위기는 없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김주필=기아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계획입니까. ▲안차관보=시장경제원칙에 따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러한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입니다. ▲김주필=정부는 현재의 경기에 대해 다소 낙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정책의 큰 줄기로 원칙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주목됩니다. 기업에서는 불황기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까. ▲손부회장=안차관보도 강조했듯이 정부가 원칙을 갖고 경제문제를 다루겠다는 의견에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불황은 종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양상입니다. 고도성장기에는 인건비도 낮았고, 기업인의 하고자하는 의욕도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인의 회생의욕도 강하지 않고, 근로의욕도 옛날같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생산요소시장이 시장원리에 의해 제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차원장=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는 등 개방화 글로벌화시대에 정부가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기업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향수에 젖어있는 듯합니다. 최고통치자와 관료들이 직접 나서 어려운 기업을 막아주고, 기업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열성적으로 뛰었던 그때 그시절에 향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 기업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달라고 하는 것도 문제고, 정부가 안되는 것을 하겠다고 나서도 안됩니다. ▲손부회장=재계가 박대통령시절처럼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것 은 아닙니다. 사실 기업들은 개방경제에 해외투자 등에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관련 제도도 OECD가입에 맞춰 국제화되어야 합니다. 국내기업만이 당하고 있는 불평등한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합니다. 지금 불황과 금융위기가 기업의 자금사정이 나빠져서 비롯됐다며 기업의 잘못으로 덮어씌우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예를들어 금융산업은 글로벌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까. 재무구조를 개선하라, 안그러면 각종 규제 등 벌을 주겠다고 채찍질을 하는 것보다는 금융산업이 하루빨리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주필=사실 WTO 시대에 정부의 정책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규제의 틀과 정부의 간섭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개방화를 명분으로 자율만 내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위기시대에 정부도 직접개입은 힘들더라도 재계현안을 교통정리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안차관보=정부는 규제를 완화해서 자유로운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경쟁이 촉진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재무구조 개선이나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차입금 손비인정한도 및 접대비한도 축소를 비롯 공시제도 강화, 소액주주권 보호확대, 사외이사제 및 감사제 도입 등 대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재계에서 요구하는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특별법은 입법체계와 운영체계상 그 효과가 빨리 나타날 수 있는 장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법인 상법 공정법, 세법 등이 개성이 너무 강해 일도양단식으로 입법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주필=차원장께서 정부와 재계입장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에서 진단해 주시죠. ▲차원장=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은 경쟁력강화입니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면 경쟁력강화는 가능합니다. 따라서 시장메커니즘이 잘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긴요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불편함을 느낄수 있겠습니다만. 또 정부는 기업이 신바람나게 경영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각종 걸림돌을 없애줘야 합니다. 다음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정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손부회장=정부의 개혁과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기업이 정치자금을 제공해온 것은 한국적인 특수상황, 다시말해 규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규제를 돈으로 사온 셈입니다. 특혜를 노리고 뇌물을 준 것은 아닙니다. ▲차원장=물론 그렇지만 특혜를 「사기위해」 뇌물을 준 것도 사실아닙니까. ▲손부회장=아니지요. 규제가 온존해있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경기규칙이 공정하지 않을 때 특혜시비가 나옵니다. 재계도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쟁을 촉진하자는 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한 여건이 안돼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권력자가 기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고, 미운 털이 박히면 하루아침에 죽는데 어떻게 합니까. 살기위해서는 비자금을 만들고,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진국처럼 게임규칙을 명확히 정하고, 기업들로 하여금 규칙을 준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김주필=개방화 자율경쟁시대에 대기업정책은 어떻게 풀어갈 계획입니까. ▲안차관보=현 경제팀의 정책가운데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정책이 많다는 비판이 항간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도유예협약의 경우 대기업들이 어음한장 날라오면 그대로 단칼에 부도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서 도입한 것입니다. 특정기업이 일시적으로 자금이 경색될 땐 해당 거래은행들이 한데 모여 일정기간에 걸려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판단하는 최소한의 기간을 갖자는 게 부도유예협약의 취지입니다. ▲차원장=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정책은 필요합니다만 이의 도입시에 규제도 대폭 완화해야 합니다. 특히 기업규모가 크다고 규제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조속히 철폐되어야 합니다. 예를들어 30대재벌에 대한 여신규제는 순전히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것이기 보다는 경제력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국민정서를 고려한 것입니다. ▲김주필=기업에선 대기업정책이 불황기에 경영상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불만입니다. ▲손부회장=맞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력강화를 위한 재무구조 개선과 구조조정의 원칙에는 하등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고도성장기에 직접금융이 발달되지 않아, 자본축적이 없는 상황에서 돈을 빌려다 경영을 하는 것이 불가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꺼번에 단칼로 해결하려는 것은 부작용이 너무 큽니다. 이런 역사적 특성을 무시하고 자기자본비율을 인위적으로 몇년안에 일률적으로 몇%로 줄이라고 하는 것은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입니다. ▲김주필=재무구조 개선대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부회장=계열기업에 대한 보증축소방안은 금융관행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금융기관은 대출때 계열사간 연대채무보증을 강제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금융관행을 무시한채 상호보증을 인위적으로 해소하라는 것은 기업들의 재무구조 건실화에 악재가 될 것입니다. 특히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구조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김주필=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손부회장=오너들이 위험부담을 안고 신규전략산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어 이의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국경제가 급성장하는 데는 강력한 오너쉽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안차관보=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 상호지보축소 등 대기업정책에 대해 고통을 느끼는 것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기업도 달라져야 합니다. 다만 기업들이 우려하듯이 이를 한꺼번에 시행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기업들이 빚에 의존해서 경영을 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 직접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유상증자 규제대상을 현행 10대그룹에서 5대그룹으로 완화하고, 부동산을 처분해서 금융기관 빚을 갚을 때 특별부가세 전액 면제해줄 방침입니다. ▲김주필=그동안 경제현상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전반적으로 짚어봤습니다.마지막으로 기업활력을 제고하고, 바닥에 있는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차원장=경기진작를 위해 인위적 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인위적인 부양책은 금융 및 물간불안을 가중시킵니다. 정부가 금융 외환시장에 신축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우리는 태국 멕시코 경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외환위기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정부는 외환위기감이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통화 외환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손부회장=정부는 정책우선순위을 분명히 정리했으면 합니다. 기업은 정부의 무더기식 대기업정책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기업정책중 우선순위를 가려 추진해야 기업들의 불안감이 해소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침체상태에 있는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신축적인 통화 환율정책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따뜻한 애정을 갖고 구조조정기의 기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안차관보=오늘 논의된 재계의 입장은 겸허하게 수렴, 정책수행에 반영하겠습니다. 재계와 대화를 많이하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시장원리에 맞게 투자와 경영을 잘한 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풍토를 조성하겠습니다. ▲김주필=오늘 좌담회에서는 솔직하고, 유익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기업들의 불안심리를 해소하고, 정부의 대기업정책의 진의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정리=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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