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노동분쟁의 사법화를 우려하며


권혁 부산대 교수


"노동법이야말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 덩어리 아닌가요?"


현 정부가 규제개혁에 나설 때쯤 어느 중소기업가가 내뱉은 하소연이다. 엉뚱하기까지 한 그 말이 오히려 반가웠다. 노동법이 노동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구나 싶어서였다. 노동법은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다. 그래서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합의라도 단숨에 무효로 만들고 엄중한 제재도 가한다. 이 정도는 그 역시 모를 리 없을 터다. 그럼에도 개혁해야 할 규제로 노동법이 먼저 떠올랐다면 기업 하는 사람의 하릴없는 푸념 정도로 치부할 일은 아닌 듯싶다.

통상임금 판결 혼선에 소송확산 우려

노동법은 산업구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혹시나 법이 아직도 산업혁명 초기 공장근로자의 상(像)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현실과 동떨어지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살펴봐야 한다. 또 강행규정인 만큼 노동법은 명확해야 한다. 합법을 전혀 의심하지 않다가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뒤늦게 불법 여부가 문제시된다면 노동법은 자칫 '규제를 위한 규제'로 오해 받기 십상이다.


통상임금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따지고 보면 원인은 통상임금에 관한 법적 흠결을 방치해 둔 데 있었다. 그 대신 행정관청의 지침이나 노사합의, 그리고 노동관행에 의존했다. 노사가 서로 임금을 주고받으면서도 판사처럼 법을 해석하지 못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뒤늦게 법원 판결로 뒤집어지면서 논란이 시작됐으니 말이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 통상임금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관련기사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후 하급심 판결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졌고 노동현장에서는 소송을 통한 소모적 해결보다 노사 간 합의를 우선시하려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런데 돌발변수가 생겼다. 지난 10월1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르노삼성차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판결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번에는 "사측이 2개월마다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중도퇴직자(일할 계산한 잔여금)에게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입장과 상반된 것이다.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된다는 것은 곧 지급 여부가 사전에 확정될 수 없음을 뜻한다. 대법원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산업계로서는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의 판단기준마저 믿을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벼랑 끝 경제 감안해 법 개정 시급

노동분쟁은 본래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갈등이다. 법원의 판결은 노사 양 당사자의 '마음'까지 풀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양보와 합의가 최선의 해결책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노사가 소송에 매달리는 것을 막을 명분이 마땅치 않다. 법원이 정작 어떤 판결을 내릴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다. 혹여 이번 판결을 계기로 통상임금 문제를 노사합의로 풀어보고자 했던 많은 기업이 또다시 갈등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글로벌 경영환경이 가히 살벌하다. 소위 '잘 나간다'는 회사도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여전히 통상임금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는 입법자가 나서야 할 때다. 입법마저 법원의 몫이 돼버린 듯한 현실도 난감하거니와 노동법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규제로 오해받는 현실도 씁쓸하다. 단언컨대 노동법은 '노사 상생을 위한 공식'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