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27일] 토·주공 통합이 선진화인가

데자뷔. 왠지 낯익은 진행이다. 언론을 통해 특정 대상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다. 여론이 돌아서면 논리적 근거는 뒷전으로 돌리고 두루뭉술한 모양으로 본심을 드러낸다. 얼기설기 추진 방안들을 마련하고 다시 홍보전을 펼친다. 여전히 효익과 비용을 따져보는 일은 제쳐두고 거칠게 의도를 달성한다. 종국에는 왜 그 일을 추진했는지, 목적은 달성됐는지에 대한 평가를 회피한다.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추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감사원 조사 등을 통해 공기업의 방만 경영과 직원 비리를 밝혀낸다. 일부 공기업이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고임금을 지급한 자료를 제시하며 공기업들의 이미지를 ‘신이 내린 직장’으로 덧칠한다. 마침내 공기업 개혁은 공감대를 획득한다. 정부는 3차에 걸쳐 공기업 개혁방안을 발표한다. 방만 경영이나 직원 비리를 바로잡는 것과 무관하게 민영화 외에도 통합ㆍ폐지ㆍ경쟁도입ㆍ기능조정ㆍ경영효율화 등의 정책방안을 담고 있다. 공기업 개혁을 왜 추진하는 것인지, 추진방법의 대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상황별로 대안들의 상대적 장단점은 무엇인지, 실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없는지, 총체적으로 기대되는 혜택과 비용은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검토자료조차 없다. 지난 1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통합을 의결했다. 법률안 제정과 정관 작성 등을 거쳐 내년 10월 통합법인을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양 공사에 대한 경영진단 등 통합을 위한 기초조사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채 덜컥 통합을 확정했다는 점이다. 양 공사 노동조합 사이의 대립과 반목이나 양 공사의 이전 예정지인 전주와 진주의 혁신도시 추진 차질 등 통합 시 확실하게 발생할 문제점들에 대한 검토도 없었다. 걱정스럽게도 득보다 실이 많은 통합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기업이 크게 망하는 7가지 이유”에서 지적한 시너지의 과장, 기존 방식에 대한 집착, 불필요한 수직적 통합, 조급한 수평적 합병 등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두루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통합해야 하는 제일의 근거로 양 공사의 기능중복을 들고 있다. 기능중복을 제거해 경영효율성을 높임으로써 토지가격과 주택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양 공사의 설립 근거인 관련 법률의 개정을 통해서도 기능중복은 회피할 수 있다. 양 공사의 기능중복의 핵심은 주택용지 개발 부문인데 양자의 기능중복이 주택용지 시장에 경쟁을 도입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공공택지가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상황에서 기능중복이 문제가 될 수 없으며 문제가 되더라도 법률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토지공사가 과도한 수익을 올리기 위해 택지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그 결과 주택가격이 높아진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도 있다. 양 공사를 통합하면 전자가 개발해 후자에 제공하는 택지는 시장 대신 내부거래를 통해 교환된다. 그 결과 택지가격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의 내부거래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은 공급원가보다는 수요에 의해 크게 좌우돼왔다. 택지가격을 낮추면 한국토지공사 대신 다른 누군가가 땅값 차익을 차지할 뿐이지 주택가격 하락으로 직결되기 어렵다. 또한 택지는 독점적 가격이 아니라 시장가격으로 결정되고 있다. 공기업 개혁의 본래 취지는 경제발전에 따라 공공 부문을 축소해 민간경제를 활성화하고 유효경쟁을 도입해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양 공사의 민영화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이다. 한국토지공사의 주요 사업 분야에 대한 지방 공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져왔다. 민간기업의 진출은 미진하다. 공공성 확보를 위해 여전히 공기업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대한주택공사의 주요 사업 분야에서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은 민간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공익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상태다. 건축원가의 공개 등을 통한 가격합리화도 가능하다. 통합에 대해 한국토지공사와 달리 대한주택공사가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까닭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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