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0월 8일] <1520> 레인힐 기차 경주


'무게 6톤 이하 기관차가 3배 이상 무거운 열차를 시속 16㎞ 이상의 지속적인 속도로 끌 수 있을 것. 우승상금 500파운드.' 1829년 10월 영국에서 열린 '레인힐 기차경주(Rainhill Trial)'의 대회 개요다. '기관차 제작비용 550파운드 이하'라는 비공식 조건도 붙은 대회의 목적은 완공을 1년여 앞둔 맨체스터~리버풀(연장 56㎞) 철도에 투입할 기관차 선정. 최첨단 증기기관차들의 경주 소식은 영국은 물론 유럽까지 달궜다. 최종적으로 참가자격을 얻은 5개 팀은 레인힐 부근에 마련된 특설철로를 10번 왕복하는 구간 56㎞를 누가 빨리 달리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였다. 대회 3일째이자 마지막 날인 1829년 10월8일 가려진 승자는 스티븐슨 부자(父子)의 '로켓(Rocket)호'. 끝까지 완주한 유일한 기차인 로켓호는 열차를 떼어내고 기관차만으로 달릴 때 순간적으로 시속 50㎞가 넘는 광속도를 내 운집한 1만 5,000여명의 관중을 흥분시켰다. 기대로 시작해 감탄으로 끝난 레인힐 기차 경주는 단순한 경주에 그치지 않고 산업혁명의 파급과 철도의 세계적 확산에 기폭제로 작용했다. 관중에 섞인 유럽의 기업가와 엔지니어ㆍ과학자들은 철도의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방적공장 지대인 맨체스터와 북적대는 항구도시인 리버풀을 둘러보고 시대의 변화를 가슴과 머리에 새겼다. 1825년 스톡턴~딜링턴 철도(연장 40㎞) 개통 이래 주춤했던 영국의 철도 건설은 경주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 1840년 영국의 철도 총연장은 3,200㎞로 늘어났다. 스크루 선박 개발자로도 유명한 스웨덴 출신 발명가 존 에릭슨도 레인힐 기차경주에서 스티븐슨 부자에게 막판에 분패한 뒤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철도 붐의 씨앗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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