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23일] 대륙봉쇄령

60전55승5패. 풍운아 나폴레옹의 전적이다. 9할이 넘는 승률에도 끝내 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은 ‘경제’에 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의 함대에 패해 영국 점령을 포기한 그는 1806년 신성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베를린 칙령’을 발표,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시킨다. 이듬해인 1807년11월23일, 영국에 기항한 배까지 나포하겠다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한다. 두 칙령의 통칭이 대륙봉쇄령이다. 고통은 영국보다 프랑스와 동맹국에게 돌아갔다. 상인들이 밀무역에 나섰고 프랑스의 관세수입은 격감했다. 목재와 곡물 수출 길이 막힌 러시아가 공공연히 영국과 무역을 재개하자 나폴레옹은 원정에 나선다. 동장군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대륙봉쇄령은 전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령 캐나다와의 영토 분쟁, 영국의 미국 선박 나포에 시달리던 미국과 영국의 전쟁이 발발한다. 1차영미전쟁에서 영국군의 방화로 검게 그을린 대통령 관저를 흰 페인트로 칠한 게 백악관의 유래다. 커피 주산지인 아프리카 항로가 대륙봉쇄령으로 막히자 대체 산지로 모색된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유럽의 사설금융업자로 머물던 유대인도 이 때부터 세계 상권의 전면에 등장한다. 대륙봉쇄령을 뚫고 밀무역을 주도한 덕이다. ‘로스차일드가의 지원이 없으면 유럽의 어느 왕도 전쟁을 할 수 없다’란 말도 나왔다. 나폴레옹 전쟁의 이면에는 대륙봉쇄령이라는 경제전쟁이 있었다. 영국의 자본력과 프랑스의 군사력 싸움은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2,400여년 전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지탱하는 것은 축적된 자본이다.’ /권홍우ㆍ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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