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라그룹:5/중 랑팡개발구(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차브레이크 넘버원” 대륙 휩쓴다/원부자재 90% 현지서 조달… 물류·생산비 절감/2000년엔 닛산·시트로앵 등 세계적 메이커에 납품 예정북경공항에서 공항고속도로를 타고 북경시내로 20분 남짓 달리면 서울의 아침을 연상케하는 긴 자동차 행렬이 나타난다. 중국 특유의 뿌연 하늘 아래로 아침햇살이 비치면서 곳곳에 걸려있는 타워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빌딩신축현장의 타워크레인 아래로 벤츠에서 쏘나타까지 다양한 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북경 동쪽 끝에서 다시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50㎞를 달리자 랑팡경제기술개발구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바둑판처럼 펼쳐진 개발구 곳곳에 1백20여개의 공장이 들어서있다. 중국 정부가 외국기업유치를 통해 의욕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대표적 경제기술개발구다. 이 곳에서 가동중인 공장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국 정부가 외자유치 성공사례로 꼽는 업체가 바로 랑팡한라루카스제동기유한공사다. 지난 3월 연구소처럼 깔끔한 공장 2층의 사무실을 찾았을때 이미 일단의 손님이 와 있었다. 울산에 있는 한라그룹계열 한국프랜지의 중국 투자환경조사단이다. 북경 일대에서 가장 빨리 제자리를 잡은 한국 투자기업인 만큼 중국 투자를 위한 방문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손님맞이에는 이골이 났다는게 송한상 상무의 귀띔이다. 만도기계로서는 자동차 브레이크를 생산하는 이 회사가 첫 외국과의 합작회사다. 한라그룹 전체에서도 외국진출 사례 가운데 가장 잠재력이 큰 공장으로 꼽힌다. 자동차 생산공장만 1백60개에 달하는 거대한 중국 시장이 바로 이 회사의 잠재력이다. 이 회사 설립은 한중수교 직후인 92년말부터 추진됐다. 중국 시장 진출에 남다른 의욕을 갖고 있는 한라그룹 정인영명예회장이 직접 나섰다. 이 지역이 속해있는 하북성 정부 관계자들과 정명예회장의 오랜 친분관계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국시장 진출에 밑거름이 됐다. 2년간의 현지조사를 마치고 94년 5월 만도기계와 중국 랑팡시중공업 국유자산경영 유한공사가 각각 40%, 영국 루카스사가 20%등 모두 2천8백56만달러가 투입된 3국 합작 회사가 설립됐다. 96년 1월 시제품을 선보이고 6월 중국 최대 자동차 회사인 장춘제일기차에 첫납품을 시작했다. 본격 생산 원년인 올해 10만개의 캘리퍼브레이크를 공급하고 98년엔 30만개를 공급해 매출액은 1백50억원을 넘어서게 된다. 하북성 정부뿐 아니라 중국 중앙정부는 이 회사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투자규모나 실적 때문이 아니다. 「국산화」가 그 이유다. 일본과 독일 등 중국에 진출한 외국 회사 대부분이 원부자재의 절반 가까이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어 국산화율이 50∼60%에 그치고 있다. 반면 한라루카스는 대부분의 원부자재를 중국내에서 조달, 국산화율이 90%를 넘어서고 있다. 그만큼 물류비용이 줄어들어 기업의 생산구조가 효율적이고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산화정책과 맞아 떨어진다. 특히 자동차부문이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중국의 국산화 정책은 각별할 수 밖에 없다. 한라루카스의 이같은 국산화율은 중국 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9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중점육성업체 및 선진기술기업으로 지정됐고 하북성 1백대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이에따라 기업소득세와 지방세 등 다양한 세금을 감면받고 있으며 자금조달에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송전무는 『국산화는 중국진출 성공의 관건』이라며 현지 토착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실제 회사 경영을 한라가 주관하고 있지만 현지 총경리(사장)를 중국측에서 맡도록 했다. 한라는 현재 1백35명인 직원을 2천년까지 5백명으로 늘릴 계획인데 모두 현지인을 채용할 작정이다. 사회주의 중국에는 「철밥통」이란 말이 널리 쓰인다. 일하는 시늉만해도 죽을 때까지 다닐 수 있는, 나라가 정해준 직장을 일컫는 용어다. 철밥통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중국인에게 효율성이나 회사의 성장은 들어보지도 못한 먼나라 이야기인 셈. 오청대 총경리는 『한라루카스의 중국진출 성공은 철밥통을 깨트리는데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중국에 대한 비전과 노력을 이해하는 중국인이 아직 드문 실정에서 한·영·중 합작기업인 한라루카스는 사회주의체제에 길들여진 중국인을 바꿔놓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인들은 『한라루카스에서의 1년이 25년간 배운 것보다 더 많다』며 일배우기에 열심이다. 이 회사가 안고 있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난제다. 자동차 회사가 많으면서도 곳곳에 흩어져 있고 아직 단일 차종이 대량생산되지 않는 것이 중국 시장의 특성이다. 이에따라 브레이크도 다양한 품종을 조금씩 생산해야한다. 한라루카스는 이같은 중국 시장에 맞게 다양한 브레이크를 생산체제를 갖추는데 힘쓰고 있다. 한라루카스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브레이크는 홍기와 AUDI V6 에 사용된다. 그러나 올 8월이면 JETTA, VANETTE, HILUX 등에 사용될 브레이크를 생산, 납품하게 된다. 2천년이면 BUICK, CITROEN, ISUZU, NISSAN 등 중국에서 생산되는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세계적 자동차에 한라의 브레이크가 사용될 예정이다. 당분간 다품종 소량생산이 계속되겠지만 중국 자동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다품종 대량생산체제가 되면 매출액이 지금의 수십배에 이를 것이라는게 한라루카스의 확신이다. 그래서 한라루카스는 조급하지 않다. 중국의 싼 노동력을 겨냥해 몇년 돈벌고 손털 생각도 없다. 그렇게 중국이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이 회사의 생산품이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하므로 싸구려 노동력으로는 성장할 수 없다. 2천년대 중국 시장 석권이라는 장기비전이 한라가 조급해하지 않는 이유다. ◎인터뷰/오청대 한라루카스 제동기유한공사 총경리/“중 자동차산업 발전에 밑거름역 톡톡/올 매출 60억… 2005년엔 1,000억 달성” 한라루카스제동기유한공사 오청대 총경리(사장)의 추진력은 회사 안팍에서 인정받고 있다. 오랜 사회주의 체제에서 막 개방의 문을 두드린 중국에서 오총경리같이 추진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아직 사회주의 흔적이 중국인의 몸에 배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오총경리는 자본주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외국합작기업 사장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오총경리는 『중국은 이제 사회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성실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만이 중국의 살길이며 인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길입니다.』며 개방에 대한 신념을 말했다. 그에게 한라루카스의 성장은 단순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발전 이상인 셈이다. 오총경리는 특히 한라루카스의 원부자재 국산화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많은 외국 기업들이 원부자재 국산화에 소홀합니다. 국산화는 중국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 외국 기업에도 이익이 됩니다. 90%이상 국산화에 성공한 한라루카스가 중국에 진출한 기업 가운데 모범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는 『중국에 많은 외국회사가 진출해있지만 한라루카스 만큼 잘 운영되는 회사는 드물다』며 한국, 영국, 중국의 3사의 완벽한 협력체제가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한라와 루카스의 중국시장 확보 의지와 자동차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중국의 의도가 일치한다는 얘기다. 한라와 하북성과의 좋은 관계도 한라루카스가 현지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이유로 꼽힌다. 오총경리는 『하북성과 한라그룹은 한중수교 직후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양측이 「호우회」라는 모임도 운영하고 있읍니다.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는 중국에서 이같은 우호관계는 절실합니다.』 그는 『처음엔 현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애를 먹었으나 이젠 어느 회사 근로자보다 열심히 일한다』며 동포들의 의식전환에 흐뭇해했다. 여기에는 한라 직원들이 보여준 성실함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게 오총경리의 평가다. 오총경리는 한라루카스의 장래를 낙관한다. 한라의 브레이크 품질이 뛰어나 판로 개척에 어려움이 적은데다 회사 운영이 순조롭기 때문이다. 물론 현지 근로자들이 한라의 기업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것도 회사발전의 밑거름이다. 그는 올 매출액은 60억원 정도로 예상되지만 2천5년께 1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랑팡(중국)=이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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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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