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당국, 2년전 자체 '위기 경고' 묵살… '말로만 쇄신' 드러나

[위기의 금융감독] '금융감독 방향' 보고서 보니<br>낙하산 금지·권한 견제 특단책 필요성 지적<br>입지 줄어들까 우려 의도적으로 무시 의혹

금융회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를 감독하는 금융 당국으로 향하고 있다. 당국에 대한 불신은 한편으로 위기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오래 전 알고 있었음에도 실천하지 않은 자신으로부터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2월 예금 인출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부산의 우리저축은행을 찾은 김석동(가운데) 금융위원회 위원장. 서울의 제일저축은행에서 다시 불 붙은 뱅크런은 금융회사는 물론 당국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서울경제 DB


금융 당국이 이미 2년 전 금융감독원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한 자체 보고서를 만들어놓고도 이를 스스로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보고서에는 금감원 인력의 퇴직 후 금융회사 재취업 금지, 금감원의 권한 견제 등 이번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후 나온 금감원 쇄신 방안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결국 금융 당국이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말로만 쇄신'을 외쳐온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경고 신호를 묵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5일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금융위원회의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감독 방향에 대한 용역보고서(2009년)'를 보면 "금융 안정을 위해서는 금융감독기관이 금융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를 점검하고 위기로 번지기 전에 다각적으로 대처 방안을 강구할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적시돼 있다. 보고서는 이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덜기 위해 금융 규제 및 감독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통합감독기구 출범 10년을 평가하면서 "외형적 통합에도 불구하고 권역별로 구분된 감독조직 운영으로 감독의 비효율성이 증대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못박았다. 제시된 다양한 대책 가운데는 특히 감독기구 인력의 낙하산 방지가 절대적으로 강조됐다. 보고서는 "금감원 인력이 퇴직 후 해당 업무 분야 및 업무 기간에 관계없이 금융회사의 감사 및 준법감시인 부서에 근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감독기관 퇴직자가 금융회사의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리스크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보고서의 이 같은 경고를 무시해왔고 저축은행 사태에 금감원이 연루되는 파문이 불거진 이제서야 쇄신 방안을 통해 '낙하산 재취업'을 막겠다고 나섰다. 당국이 보고서가 쓰인 2년 전에만 보고서의 조언을 실천했더라도 부산저축은행 등 사태가 터지지 않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금감원의 과도한 권한이 가져올 위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음을 냈다. 우선 "지난 2008년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위기 감독 기구인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위 산하로 소속되면서 상시감독기구의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위기 감독기구(예보)가 금융감독 당국의 관리 및 통제 아래 있는 경우 예보의 적시 개입 및 엄정한 집행에 방해가 돼 결국 국민경제적 비용이 증대할 우려가 상존한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금융위는 금감원과 예보의 이해 상충 최소화 및 업무 공조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예보가 금감원의 단순 조력자가 아닌 협조자 및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감독정책을 입안해 집행해야 한다"며 예보의 기능과 역할을 재조명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당국은 이 같은 제안 역시 무시하다 이번 사태가 터지고서야 예보의 조사 권한 확대 및 금감원과의 교차 조사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권한 견제와 함께 미국의 금융감독협의회(FSOC)와 같은 '금융감독협의회'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담겼다. 상설 협의체 형식의 이 기구에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금감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이 참여해 감독 기관 간 정보 공유를 촉진하고 감독 정책의 큰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아울러 협의회 안에 5개 기관의 부기관장급으로 구성된'정보공유협의회'를 설치해 각 기관의 정보 공유 내용 등을 표준화, 공동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금감원과 한은이 양해각서(MOU)를 맺는 지금의 어정쩡한 공동검사 방식으로는 금감원의 과도한 검사 권한을 막기 힘들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이 밖에 ▦당연직 위원을 비상임위원으로 전환하는 등 금융위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미국처럼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신설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용역보고서는 관심인 국내금융정책(금융위)과 국제금융정책(재정부)에 대해 "효율적인 금융정책 업무 수행을 위해 업무 간 협조 및 조정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통합 방향은 건전한 견제와 균형을 통한 중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핵심 당국자는 "금감원의 개혁을 위해 총리실 주관으로 만들어질 태스크포스(TF)에서 논의될 내용도 결국 2년 전 보고서의 내용이 상당 부분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지금의 위기를 잉태한 것은 분명히 짚어볼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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