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금박장 아들 김기호씨

최정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원장


요즈음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스승, 멘토를 찾는 것이 성공 비결의 하나처럼 여겨지곤 한다. 유명한 지식인 강연을 통해 그들의 성공 노하우를 배우고 인생 선배들을 찾아가 진로에 대해 상담하다 보면 확실히 시야가 넓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젊은 시절에 흔히 겪게 되는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철없던 나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일찌감치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년들이 기특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찾는 스승이란, 멘토란 어떤 모습일까. 수많은 도전 끝에 특정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전도유망한 사업가일까. 국내외 매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선정된 유명인일 수도 있고 상아탑에서 후학 양성에 일생을 바치고 이제는 백발이 성성해진 노교수의 모습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누구나 화려한 성공을 꿈꾸는 이 시대에 로봇설계사라는 첨단 분야의 직업을 버리고 1㎜의 만분의1 두께 금박과 씨름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이수자 김기호씨 이야기다. 금박장(金箔匠)이란 얇은 금박을 이용해 직물 위에 다양한 문양을 찍어내는 장인을 말하는데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매우 귀하게 쓰이던 것으로 왕실의 예복, 임금의 어좌나 현판, 부채 등에 위엄과 가치를 더해주는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 공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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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은 이렇다. 조선시대부터 시작해 대대로 금박장 가문의 가업을 4대째 이어오던 인간문화재 김덕환의 건강이 악화되자 당시 로봇설계사였던 아들은 금박장이 되기로 결심한다. 남부럽지 않던 회사를 그만두고 금박장의 길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가업을 잇는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지난한 삶의 시작일지도 모를 그 길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통해 한국 전통 금박공예의 아름다움과 독보적인 가치를 체득해온 김기호씨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금을 두드려 얇게 만든 금박을 직물 위 도안에 새겨 넣는 금박 작업은 작업자의 안목은 물론 혼과 정성을 쏟는 세심한 작업 태도가 만나야 얻을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방식이다.

어린 시절에는 사라져가는 전통 공예의 길을 이어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긴 적도 있었다고 고백하던 그가 아버지의 인생을 이어 우리 고유의 금박공예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일에 평생을 걸고 있다. 2009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소장한 '봉황동 공작도' 전시에 참여하고 2010년 파리 패션쇼에서도 우리 전통 금박공예를 당당하게 내놓아 극찬받는 등 많은 작품으로 한국 전통 장인의 땀과 노력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스승의 날이다. 오늘도 끊임없이 미디어와 책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삶의 스승과 지혜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과감히 평범한 일상에서 배움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에 내게 꼭 필요한 지혜와 철학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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