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카리스마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가까이 지내면서도 별로 대단찮게 봤던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최고경영자(CEO) 노릇을 멋있게 해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리에 앉게 되면 부하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할 수 있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도 할 수 있는 헤드십(headship)이라는 게 당연히 주어지기 때문이다. 헤드십만으로도 부하를 부릴 수 있으니 반은 접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수장 노릇을 하기가 그리 녹록지 만은 않은 것 같다. 각 분야마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가치관이 다양하고 이해관계도 첨예해 상사의 명령이라고 무조건 복종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헤드십만으로는 더 이상 조직을 이끌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마음이 나도록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여건 조성을 해나가는 매니저십(managership)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매니저십은 조직원의 존경과 신뢰에 바탕을 둬야 빛이 난다. 상사는 두개의 눈으로 조직을 보지만 부하들은 수천개의 눈으로 윗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기 고집보다는 수많은 직원들의 생각을 함께 아울러야 한다. 조직원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신실한 믿음을 얻지 못하는 지도자가 가는 길은 외로운 독선만 있을 뿐이다. 최근 감성경영이라는 용어가 자주 회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신임 경제수장 후보들을 놓고 이런저런 인물평이 만발했다. 전문성이나 지도력면에서 모두가 적임자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사람은 성품이 부드럽고 합리적이기 때문에 조직을 통솔할 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눈길을 끌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강점으로 받아들여야 할 요소가 결격 사유로 부각되는 장면이다.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 통치 이래 은연중 ‘한국식 카리스마’에 익숙한 나머지 진정한 러더십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리더십이란 겁을 주면서 복종을 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희망을 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도록 하는 능력이다. “해내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해보자”고 다독이면서 용기를 북돋우는 일이다. 이제는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돌쇠형 수장보다는 요란스럽지 않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성적 카리스마의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구성원들에게 자존심과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일할 맛이 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한 조직의 최고 통솔자가 갖춰야 할 진정한 카리스마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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