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위 자동차메이커 포드의 앨런 멀랠리(63) 최고경영자(CEO)는 항공기 엔지니어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가 2006년 9월 포드자동차의 CEO를 맡았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비행기 기술자가 자동차회사를 경영할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가 포드를 맡은지 2년만에 파산 직전의 자동차 회사가 기사회생했다. 그가 단행한 살을 깎는 구조조정의 덕분에 공룡과 같이 거대한 몸집의 포드 자동차가 가볍게 움직이며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포드는 지난 1ㆍ4분기 1억달러의 수익을 내며 회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미국 최대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이 적자를 낸 가운데 몇 년간 저조한 실적을 보이던 포드는 적자를 낼 것이라던 월가의 전망을 뒤엎은 것이다. 포드 기사회생의 일등공신은 항공기엔지니어 출신의 CEO 멀랠리라는데 이견이 없다. 캔자스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한후 보잉사에 입사, 사업부 사장에 이르기까지 그는 항공기 엔지니어로 커왔다. 그러던 그가 37년간 몸담았던 보잉사를 그만두고 2006년 포드 CEO로 영입됐다. 당시 포드는 2005년 153억 달러, 2006년 126억 달러에 이르는 장기 적자행진을 기록하며 105년 역사상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그 여파로 2007년 10월에는 미국내 자동차판매실적에서 도요타에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멀랠리는 세계자동차업계에서 퇴장할 운명에 처한 포드를 살려 내야할 백기사로서의 업보를 안고 출발했다. 그는 사업 구조조정에 과단성 있는 결단력을 보여줬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3년후인 2009년까지 ‘흑자경영 달성’을 선언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우선 4,200여 명에 이르는 시간제 근로자들을 감축했다. 또 재규어와 랜드로버 등의 브랜드를 차례로 매각했다. (영국 회사였던 두 자동차 회사는 포드에 넘어갔다가 최근 인도 타타그룹에 인수됐다.) 핵심 차종에 주력하고 수요가 늘고 있는 소형차의 개발에 보다 공을 들이기 위해서다. 멀랠리의 이 같은 전략은 똑같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크라이슬러나 GM과의 차이점이다. GM은 여전히 8개의 브랜드를 고수하고 있다. 멀랠리는 또 고유가 등으로 수요가 줄어든 대형 SUV 대신 소형SUV나 승용차 생산비중을 강화했다. 2004년 포드 자동차판매의 70%가 픽업 트럭이나 대형SUV였지만, 지난 3월에는 43%로 줄었다. 포드의 위기는 시장의 흐름을 못 읽은 탓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철저히 받아들인 것이다. 마진이 낮은 렌터카 판매도 줄였다. 렌터카 판매 축소로 판매량 면에서 도요타에 밀려났지만, 멀랠리는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는 수익성이 더 중요하다”며 단호한 표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싸게 많이 팔기보다는 제대로 된 가격으로 수익을 보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치밀한 전략가적 기질을 보여줬다. 멀랠리는 외형적인 구조조정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잘 팔리는 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냐’는 근본적인 전략부터 다시 고민했다. 그래서 2007년 말 공개된 차가 Y세대를 주공략층으로 잡은 소형차 ‘포커스’다. 포드 개발팀은 첫 자동차를 마련하려는 젊은 층을 잡기 위해 20대의 문화에 몰두했다.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은 여배우 제시카 알바의 포스터나 스타벅스의 사진을 회의실 벽면에 붙여놓았다. 또 음성으로 휴대전화, MP3플레이어 등을 조작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SYNC' 시스템을 탑재하기도 했다. 그 결과 포커스는 히트를 쳤다.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포커스의 판매량은 32% 증가했다. 포드, GM, 크라이슬러의 전반적인 자동차 판매량이 20%~30% 가량 감소했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다. 멀랠리의 영입 이후 포드는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만 보던 사람이 자동차에 대해 알겠느냐는 세간의 의구심도 걷혔다. 2007년 4ㆍ4분기 적자 규모는 27억 달러 가량으로 줄었고, 포드의 품질이 도요타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28일에는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커크 커코리언이 포드 지분(4.7%ㆍ1억만주) 매입에 나섰다. 기업사냥꾼의 주식 매입에 포드는 오히려 투자가들이 긍정적 신호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멀랠리가 이같은 성과로 마냥 칭찬만 받은 것은 아니다. 회사가 적자인 상황에서도 멀랠리는 취임 후 4개월 동안 보수로 3,910만달러(약 364억원)를 받았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포드 노조원들은 작년 회사 재건을 위해 임금과 복지혜택을 양보한 것이지, 경영진의 높은 보수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다”며 비판했다. 앞으로 포드가 확실히 살아나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올 1ㆍ4분기 수익이 구조조정의 성과라고만 볼 수는 없다. 달러 약세의 덕을 본 부분도 있다. 멀랠리도 “올해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적자를 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월가에서도 신용위기와 주택경기침체가 자동차판매에도 영향을 미쳐 올해 포드의 판매실적이 최저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드의 재도약을 기대해 볼만하다는 평가다. 지난해 가을 멀랠리는 포드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도요타의 짐 팔리 최고마케팅책임자를 데려왔다. 지난 11월에는 비용감축안을 두고 UAW와 합의를 이뤄내기도 했다. 취임 후 ‘공약은 적게, 실천은 그 이상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해 온 멀랠리가 과연 ‘그 이상의 성과’를 포드에 안겨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앨런 멀랠리 주요 경력 ▲1945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 ▲1968년 캔자스대학 항공우주공학과 졸업 ▲1969년 보잉사 엔지니어로 입사 ▲1994년 보잉사 항공개발부 수석부사장 ▲1997년 보잉사 부사장 ▲2001년 보잉사 사업부 CEO ▲2006년 9월 포드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