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옛 안기부 불법도청 파문에다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 ‘MBC X파일’ 등 악재가 연이어 쏟아지면서 재계의 신뢰도를 실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검찰의 대선 불법자금 수사 이후 윤리경영 강화와 경제 살리기 분위기 조성 등을 통해 어렵사리 이미지를 회복하고 있는 시점이라 최근 연이어 터지고 있는 악재들에 대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위장계열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자 심리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주요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거론되지 않은 다른 대기업마저 ‘혹시’ 하는 마음에 잔뜩 움츠리는 모습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기업들은 고유가와 위엔화 절상, 재벌에 대한 정부의 잇단 강경책 등 안팎 악재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최근 일련의 사태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의지가 급속히 약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을 수장으로 모시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는 물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맞아 몹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재계는 당초 오는 27일 경제5단체장 명의로 경제난 극복을 위한 경제계의 제언을 담은 ‘대정부 공동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 관련 첨예한 현안에 대한 재계의 주장이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있을 지 솔직히 의문”이라며 “앞으로도 기업경영과 관련한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일련의 사태에 휘말리고 있는 주요 기업들도 사태의 파장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데 최대한 주력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에도 불구하고 옛 안기부가 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도청테이프 내용 등을 보도한 MBC 등 일부 언론사에 대해서는 법적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법무실을 중심으로 법적검토를 대체로 마무리 했으며 조만간 소송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두산 역시 그룹의 주요 관계자들이 주말 휴일에도 대부분 출근해 투서 파문에 따른 검찰수사에 대비하는 한편 내부 임직원들이나 고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분주했다.
다른 대기업들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여러 사태들이 하루빨리 수습돼 기업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은 기업들이 ‘과거의 일’에 얽매여 시간을 보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사태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은 가급적 막고 싶다는 속내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