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올림픽과 국격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는 '시민 의식'이 사람들의 몸에 아직 배어 있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정류장에 버스가 오면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가 서로 먼저 올라타기 위해 밀치고 떠밀고는 했다. 버스 안에서 창문을 연 채 버젓이 담배를 빼어무는 것은 예사였다. 한여름 시내 거리에는 꼭 한두 명씩 상의를 벗고 나타나는 동네 어르신들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견디기 힘든 무더운 폭염 속에서도 웃통을 벗고 집 바깥을 활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20여년 전 풍경이 그러했다.

선진 시민의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된 시점을 88 서울올림픽 전후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정부는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시민문화'운동에 나섰다. 세계인들에게 올림픽 시민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줄 서기 운동, 길거리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과 같은 구호들이 신문ㆍTVㆍ학교ㆍ반상회 등에서 귀가 닳도록 울려 퍼졌다.


물론 정부 주도의 반 강제성을 띤 캠페인은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지만 올림픽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올림픽 이후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릴 때 줄을 서게 됐고 쓰레기를 길에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됐다.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 문화ㆍ사회적 변화도 이러했으니 경제 발전과 대외적 이미지 상승 등 유무형의 영향은 오죽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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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올림픽은 개최국의 '국격 상승'이라는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고는 했다. 서울올림픽은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사례다. 국란을 딛고 일어선 당당한 모습을 전세계에 알리고 한강의 기적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올림픽 관련 산업의 발전을 통한 국내 경제의 활성화와 국제 신인도 상승으로 인한 수출 산업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얻은 국민들의 자신감과 전사회적인 활력은 가장 값진 자산이 됐다.

17일 동안의 눈물과 감동을 뒤로 한 채 막을 내리는 런던 올림픽은 초반의 경기운영 미숙으로 우리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유구한 문화적 자산을 지닌 영국이라는 나라의 국격을 어김없이 보여 준 행사라 생각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울려 퍼지고 칠순을 넘긴 비틀즈의 전 멤버 폴 매카트니가 '헤이 쥬드'를 열창하는 개막식의 여운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오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다가오고 있다. 평창올림픽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국격의 상승을 선사해줄 것인가. '주폭'이니 '왕따'니 '성희롱'이니 하는 아름답지 못한 단어들이 2018년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리는 행복한 상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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