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업투자 위축… 대책 급하다/손병두 전경련부회장(시론)

연말이 다가오면 누구나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느라 분주해진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 사업실적에 대한 평가를 하고 내년도 투자계획을 수립한다. 기업의 투자규모는 경영여건과 국내외 경제환경을 분석해 가장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기업의 투자계획은 현재 우리경제가 처한 상황을 가늠하고, 내년도 경제환경을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최근 전경련은 30대그룹을 대상으로 내년도 투자계획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기업의 설비투자가 올해보다 1·4%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수준에서 투자규모를 동결하거나 축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왜 투자를 줄이고 있는가. 앞다투어 예정되었던 투자계획을 축소하고, 이미 집행중이던 투자도 재검토해 유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현재 우리가 대내외적으로 처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올 한해 우리 경제는 불황이 구조화하면서 기업의 부도가 속출하고, 금융 시스템의 기능이 마비되는 등 실물과 금융부문이 동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년에도 총수요 부진과 금융시장 불안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으며 따라서 경제의 불투명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앞날이 이렇게 불확실한 데 기업이 투자를 축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투자를 제약하는 또다른 요인은 기업의 효율적 투자배분을 가로막는 제도상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불황기에 기업들은 비효율적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신규유망산업 진출을 모색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사업 정리, 자산매각, 기업합병 및 분할 등에는 출자·자금문제 등 제도적인 제약이 가로막고 있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경기침체기에 산업생산이 줄고, 가동률이 떨어지면 기업은 고용조정,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불황기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손실을 감수하고, 재고가 누적되더라도 비효율적 기업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경제구조와 제도에 대해 정부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당장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자금조달환경도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고비용구조가 누적되어 기업의 내부유보가 충분치 못한 여건에서 기업은 외부자금을 이용해 투자자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은 선진국보다 2∼3배 높은 고금리를 지불해야 한다. 제대로 된 장기설비금융이 마련되지 못한데다 최근 들어서는 금융불안이 심화하면서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단기자금을 조달하여 투자자금화해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내년도 투자의 가장 큰 애로요인으로 자금조달난을 호소하고 있다.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시장과 해외자금 차입은 올해 투자자금 조달원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투자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기업투자는 미래의 생산수준을 결정함으로써 성장 잠재력을 배양하고, 경쟁력 기반을 조성하는 수단이며, 수출과 함께 경기를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에서는 과잉투자의 폐해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으나 산업의 발전속도가 빨라지고 갈수록 상품의 수명주기가 단축되는 세계시장에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투자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에 아쉬운 것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경제회생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협력하는 자세를 회복하는 일이다. 외환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경제운영 주체들간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고 서로 책임을 전가할 경우 우리 경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국면으로 떨어질 것이다. 기업들이 내년 투자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경제위기 극복노력이 미진, 경제전망이 불투명해진데 대한 실망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이해관계에 얽혀 지지부진했던 경제구조의 개혁과 제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고비용 구조를 고착화하는 제도를 개혁하고 우리 경제가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경제운영 주체들이 불신을 해소하고 지혜와 힘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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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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