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데스크 칼럼] 밀레니엄은 사기다

21세기가 언제부터인지 대답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2000년 1월 1일」이라고 대답하면 감성적인 사람이고, 「2001년 1월 1일」이라고 하면 이성적인 사람이다. 감성적인 사람은 「00」으로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한 세기를 「00」으로 끝낼 것을 고집하기 때문이란다.100년 전 뉴욕타임스는 1899년 12월 31일자에 「내일이면 우리는 한 세기의 마지막 해에 접어들게 된다」며, 마지막 1년을 남겨둔 19세기를 회고했다. 이로부터 1년 하고도 하루가 지난, 그러니까 1901년 1월 1일자에 뉴욕타임스는 「20세기로의 성공적인 진입」이라는 제목 아래 뉴욕시의 축제 분위기를 묘사하며 「새로운 세기는 이렇게 의기양양하게 시작했다」고 썼다. 미국의 지성을 대변하는 뉴욕타임스는 한 세기는 「0년부터 99년까지」가 아니라 「1년부터 100년까지」라는 명제를 고수한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지난 96년 「21세기의 시작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내용과 「대중은 2000년에 새 밀레니엄이 시작한다고 믿고 있다」는 내용의 독자 투고 2건을 게재하면서 논쟁에서 은근히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세기는 100년이었지만, 20세기는 어쩌면 99년밖에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미터계에서 「9999.9」㎞가 「10000.0」㎞로 바뀌는 순간, 또 「11110.9」㎞가 「11111.1」㎞로 바뀌는 순간을 즐기는 대중에게 한 세기가 99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모순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대중은 「1999년 12월 31일 23:59:59」가 「2000년 1월 1일 00:00:00」으로, 무려 14개의 숫자가 한꺼번에 바뀌는 순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 순간은 정말 극적이다. 지금 살아있는 어떤 생물도 이런 「밀레니엄의 전환」을 경험하지 못했다. 불과 몇몇 그루의 나무 정도나 그 전환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루살이도 이 「전환의 순간」에 살아있다면 「밀레니엄 하루살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 「밀레니엄의 순간」에 하늘에는 아무런 징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밀레니엄 역법은 해와 달과 지구의 운동을 토대로 계산한 것이지만, 해와 달과 지구를 포함한 천체는 인간의 밀레니엄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예정한 「그 날」에 아무 변화가 나타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가오는 「밀레니엄의 순간」은 또하나의 종말론처럼 사기(詐欺)로 판명날 것이다. 밀레니엄은 그야말로 우연의 산물이다. 인간이 5개짜리 손가락을 갖게 된 것이 우연이기 때문이다. 4개짜리나 6개짜리 손가락을 가졌다면 8진법이나 12진법이 널리 퍼졌을 것이다. 10진법을 사용하는 유럽 문화가 세계를 지배한 것도 우연이다. 만약 중국이나 마야 문명이 세계를 지배했다면 12진법이나 20진법이 널리 쓰였을지도 모른다. 유럽 문화가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인 것도 우연이다. 기독교 문화가 아닌 불교 문화를 받아들였다면 부처의 탄생을 기준으로 역법을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열흘 뒤면 「카운트 다운」을 시작할 「밀레니엄의 순간」은 그야말로 우연히 10진법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여 우연히 세계를 지배한 유럽 문화의 우연한 산물일 뿐이다. 게다가 예수의 탄생도 4년이나 차이 나고, 때때로 윤달을 넣었다가 빼야 하는 복잡한 계산에, 「0년」이 빠졌기 때문에 21세기의 시작이 아직도 헷갈리는, 그야말로 「누더기 같은 역법」의 산물일 뿐이다. 따라서 이런 엉터리 역법이 만들어낸 밀레니엄은 사이비 종말론의 밀레니엄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사기일 수밖에 없다. 이 사기를 저지르는 것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말 구유가 아닌 백화점 진열대에서 아기 예수를 보게 만들고, 산타 클로스가 고아원보다 백화점에 더 자주 나타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덩이 金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보는 것은 돈에 찌든 한 덩이 누런 해에 지나지 않는다. 정동진에 가면 「밀레니엄의 순간」에 자본주의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HUHH20@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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