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12> '애송이' 짓을 허하라

먹음직스러운 감이 여럿 달렸습니다. 눈으로 봤을 땐 잘 익은 것처럼 보여도 잘 못 고르면 달콤함 대신 입안 가득 떫은 맛만 느낄 수 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덜 익은 감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기다려주면 잘 익은 홍시로 변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완연한 가을, 빨갛게 익은 감의 계절입니다. 문화적으로 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추수의 계절에 맞는 작은 즐거움이란 뜻도 있지만 설익으면 떨떠름하고 맛없는 과일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일본어로 ‘감’을 뜻하는 ‘카키’라는 단어는 때때로 애송이를 뜻한다고도 하지요. 단단하고 찔러도 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홍시가 됩니다. 그래서 노력과 수련이 필요한가 봅니다.

그러나 ‘애송이’를 받아주는 시선에는 다양한 각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아직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로 돌아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그가 건재할 당시 대우는 다양한 ‘애송이’들을 신입사원이 감히 넘보기 힘든 전략실에 배치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운동권 경력이 있어 고시를 볼 수 없는 인재들, 아이디어와 열정은 넘치지만 주류 대학을 나오지 못해 고민하던 사람들을 품었다고 합니다. ‘수출보국’ 이념을 주도하는 일류 대기업의 오너였지만 젊은이들을 만나면 본인은 ‘진정한 월급쟁이’일 뿐이라며 겸손히 말할 줄 아는 그의 면모는 많은 ‘애송이’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 김 전 회장이 롤모델로 꼽은 사람은 다름 아닌 조조(曹操)입니다. 서기 190여년 경, 한나라가 한참 쇠퇴의 길을 걷고 있을 무렵 당대의 질서와 조직에 반감을 품은 그는 진짜 애송이였습니다. 황금 1억 전으로 관직을 샀던 아버지를 구슬려 동탁 토벌을 위한 의군을 조직하는가 하면, 미인 하나 때문에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가 아들을 잃고 자신도 죽을 뻔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이 40이 다 되도록 실수투성이였던 그는 그래서 열심히 하지만 서투른 이들에게 관대했습니다. 유비, 손권처럼 전통 사회의 질서에 기댈 만한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중국의 북방을 장악할 수 있었던 실력은 폭넓은 안목과 조직 내 다양성을 인정하는 경영 방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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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에게 관대한 조조의 일면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일화가 관우와의 이야기입니다. 날랜 용장으로 유명했던 관우는 자신의 본거지를 잃고 떠돌아다니던 의형 유비와 떨어져 조조에게 밥을 얻어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관우는 조조가 보낸 음식이며 아리따운 미인들을 애써 거절하는가 하면, 조심스레 ‘취직’을 권유하는 그를 불쾌할 만큼 면박 주기도 했습니다. 주변 측근들의 집단적인 분노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관우의 오만함을 웃어넘겼습니다.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 달려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관우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그가 제대로 만나 주지 않자 살던 집을 비워 버리고는 대문 앞에 편지 한 장을 써 붙이고 북방으로 가 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다섯 개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조조가 아끼는 장수들이 그를 가로막자 관우는 일기당천의 힘으로 이들을 도륙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하지만 조조는 관우의 그런 행동까지 눈감아줍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다는 욕망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비록 둘은 같은 편이 되지는 못했지만 조조의 여유로운 태도는 길이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관우의 행동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치기 어린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그 당시 행동만 놓고 보면 관우는 조조에게 은혜를 모르는 행동을 한 셈입니다. 물론 훗날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의 목숨을 살려주며 빚을 갚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심해지면서 조직들이 쇠퇴하는 이유는 관리와 리더십의 부재라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창의성을 죽이는 구조가 한몫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진정한 창조경제, 창조경영은 사람의 잠재력을 극단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에서 시작됩니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을 한울타리에서 소화할 줄 알았던 조조의 지혜가 아쉬운 시대입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 교수는 대기업 안에서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노벨상을 타려면 기존의 이해와 관념을 깨는 ‘미친 짓’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통념과 편견으로 가득 찬 조직 안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죠. 특히 당장 돈 되는 것,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를 애송이 취급하는 ‘꼰대 마인드’가 가장 큰 걸림돌일 것입니다. 나카무라 교수는 그래서 전통 일본의 산업 조직이 커다란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창의적인 인재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하는 가장 흔한 조언이 ‘무모한 것일지라도 도전을 멈추지 마라’는 이야기입니다.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란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현상유지만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혁신을 위해서는 그 속도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하겠죠. 이 같은 이유로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시기입니다. 문제의식과 필요성을 절감하고도 여러분이 속한 조직에 그런 인재가 모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인재가 없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조금 어설프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조직원의 행동을 애송이 짓이라고 격하하는 꼰대 마인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경영학의 거장 제임스 마치는 조직 안에서 ‘현명한 바보가 되는 기술’을 꼭 익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튀는 사람, 몽상가, 얼핏 바보 같은 독특한 사람들을 내치지 말고 노련하게 끌어안을 때, 조조처럼 성공하는 혁신이 가능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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