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신상털기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까닥 잘못했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출신학교는 물론 신체사이즈까지 줄줄이 새나갈 판이니 말이다. 해킹이 아니라 신상털기 얘기다. 전화번호 하나만 입력하면 상당수 신상 정보가 주르륵 뜨는 프로그램까지 돌아다닌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 잘못한 게 있다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이 저지른 일에 내가 주범으로 몰린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신상털기가 본격화된 것은 2005년 6월 그 유명한 '개똥녀'사건 때였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리는 사연이 알려진 후 분노한 네티즌들은 이 여성의 학교와 이름, 얼굴사진 등을 낱낱이 털었다. 이후 지하철 막말녀, 1호선 막말남 등의 신상이 털렸고 당사자는 해명 한마디 못하고 만신창이가 돼야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도 한번 붙은 오명을 떨어내지는 못했다. 지나치다는 지적은 소리 없이 다수의 침묵 속에 묻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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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털기는 인터넷의 익명성과 비뚤어진 정의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결합해 만든 사회병리현상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사회규범 위반자를 단죄하겠다는 인식이 블로그와 카카오톡을 만나 집단화되며 사이버 폭력으로 진화한 것이다. 자신이 악당을 무찌르는 정의의 사도라는 생각에 의도만 중시될 뿐 과정과 결과는 무시되기 일쑤다. 익명성 뒤에 숨어 있다 보니 진실과 달라도 자신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다. 죄의식 없는 무차별 폭력의 확대 재생산이 가능해진 이유다.

△최근 한 유명 연예인의 여자친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신상털기가 또 기승이라고 한다. 엉뚱한 사진이 돌아다녀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고인으로 만드는가 하면 병원을 지키고 있는 연예인을 미국 도피자로 만들기도 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때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내일 다른 사건이 일어나면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나타날 것이다. 빅브라더가 돼버린 SNS의 공격은 지금도 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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