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중소 건설업체에서 근무하던 황모(37)씨는 올해 초 회사가 문을 닫으며 실직자가 됐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은 오래 전에 바닥이 났다. 아내가 식당 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비를 벌어오지만 두 자녀를 부양하기에는 버겁다. 최근 두 달 동안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물론이고 원금상환까지 연체했다. 급한 마음에 거주하던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주택거래가 끊겨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 그는 고심 끝에 최근 신용회복위원회에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구제절차를 밟고 있다. 황씨는 "경기침체로 하루아침에 실직자와 채무불이행자가 되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라며 "일자리도 구하기 쉽지 않아 상황이 당장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푸념했다. 경기침체의 골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워크아웃이나 프리워크아웃 등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물가는 뛰고 전세금은 치솟는데 건설경기 등 실물경제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잿빛으로 변하면서 대출금을 갚지 못한 서민들이 구제금융에 손길을 뻗치고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가계 부문의 연체가 늘어나고 이를 줄이기 위해 다시 여신관리를 보수적으로 하면서 정상적인 사람들까지 대출이 힘들어지는, 경기침체기에 나타나는 전형적 돈줄기의 악순환 모형이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9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월 말까지 신복위에 프리워크아웃을 신청한 건수는 1만1,304건으로 전년동기(5,455건) 대비 50% 이상 급증했다. 프리워크아웃은 채무불이행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 만큼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신복위는 금융권 연체기간이 1개월 초과, 3개월 미만에 총 채무액이 5억원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프리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다. 프리워크아웃보다 한 단계 높은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이들의 증가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신복위에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한 건수는 6만4,490건에 이른다. 역시 전년동기(6만3,745건) 대비 증가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 등 금융사들은 부실 줄이기에 애를 쓰고 있다.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75%로 전달보다 0.04%포인트 상승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구제금융 증가 추세는 가계부실화가 반영된 결과"라며 "일부 대출자들은 채무회피를 위해 워크아웃을 악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