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루빈 사단'과 '워런 사단'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팀 구성, 금융정책을 놓고 또다시 격돌했다. 민주당 내 '월가 개혁의 기수'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은 미 재무부 국내금융담당 차관으로 지명된 라자드의 안토니오 웨이스 글로벌 투자은행 헤드가 오바마 경제팀의 대부인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씨티그룹 고문)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고 지명 철회를 벼르고 있다. 워런 의원은 지난 2013년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선호하던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월가와 유착한 루빈 인맥'이라고 비난하며 중도 하차시킨 바 있다. 이 같은 양 진영 간의 격돌은 미 경제정책이나 월가 금융개혁의 향방을 좌우하는 차원을 넘어 2016년 차기 대선에도 중대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루빈은 '커튼 뒤 오즈의 마법사'= 워런 의원 등 민주당 내 좌파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뿌리가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 회장을 역임했던 루빈 전 장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 등이 1980~90년대 실시한 금융규제 완화에 있다고 본다. 실제 루빈 전 장관은 월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빌 클린턴 행정부 재무장관 시절 상업은행과 투자은행(IB)을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무력화하는 '그램-린치-빌리법'을 1998년 통과시키는데 앞장섰다.
지금도 루빈 전 장관은 오바마 경제팀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다. 잭 루 재무장관을 비롯해 래리 서머스, 티모시 가이트너 등 오바마 행정부 1기 재무장관이 모두 씨티그룹 출신이다. 이 뿐만 아니다.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 마이크 프로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이슨 퍼먼 백악관 대통령경제자문위원장, 실비아 매튜스 버웰 보건복지부 장관(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피터 오재그 전 의회 예산국장, 진 스펄링 전 미국 국가경제회의(NEC) 의장 등이 모두 씨티 인맥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워런 등은 금융위기 이후 월가에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도 금융 개혁에 실패한 것이 루빈 전 장관의 입김 때문이라고 맹공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대의 아서 윌마스 교수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처럼 커튼 뒤로 가면 루빈이 있다"며 "루빈과 그의 동료들은 현재의 미국 은행 모델을 유지하는 막강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루빈 사단' 때리기가 가속화하면서 워런 의원은 월가에 친화적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위협할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3일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1조1,000억 달러 규모의 2015회계연도(올해 10월1일∼내년 9월30일)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 워런 의원이 씨티그룹을 맹공하자 민주당 골수 당원이 열광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경제팀은 예산안 통과를 위해 공화당이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감독을 규정한 2010년 도드-프랭크법을 완화하는 조항을 포함한 것을 묵인했다. 하지만 워런 의원은 "씨티그룹이 규제 완화 조항을 막판에 끼워 넣었는데도 아무도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며 "월가 내부자가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회전문' 인사에 신물이 난다"고 비판했다.
◇웨이스 지명은 루빈 대 워런 대리전= 루빈 사단과 워런 사단은 웨이스 차관 지명자를 놓고 또다시 충돌할 기세다. 워런 의원은 인준 반대 이유로 허핑턴포스트에 "과거 월가 경력이나 배경이 미 재무부의 소비자 보호나 금융기관 규제에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워런 의원 측은 웨이스 대표가 몸담은 라자드가 버거킹이 캐나다 도넛 업체인 팀호튼을 인수·합병(M&A)해 미국 내 세금을 회피하는데 자문을 맡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미 백악관은 "웨이스 대표가 라자드에서 M&A 자문과는 전혀 관련 없는 자본 흐름, 내부 규제 등을 관리했을 뿐이며 민주당의 세제 개혁도 지지했다"며 반박했다. 또 웨이스는 지난해 상원 민주당 캠페인에 3만2,400달러를 지원하고 금융개혁을 지지하고 있어 월가와 민주당 간 가교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더구나 웨이스의 경력을 감안하면 루빈의 '이너 서클'로 보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워런의 웨이스 공격이 실제로는 월가를 대표하는 루빈 사단을 간접 겨냥했다는 게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금융 전문지인 아메리칸 뱅커는 "워런은 웨이스가 월가의 대부인 루빈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스턴대 금융·법·정책 센터의 코닐리우스 헐리 교수도 "웨이스 자체가 아니라 그가 대변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워런의 의도대로 웨이스의 차관 인준이 무산될 지 미지수다. 웨이스가 루빈 사단이 장악한 오바마 경제팀과 월가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런의 무기는 풀뿌리 당원, 제조업, 노조 등의 광범위한 지지다. 이미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위원 2명이 인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10만명 이상의 민주당원들이 웨이스 인준 반대에 서명했고 중소은행을 대변하는 미국독립은행협회(ICBA)도 반대의사를 전달했다.
이 때문에 웨이스 인준은 공화당이 상원 다수를 차지하게 될 내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내 좌우 대립과 맞물려 공화당 지원에 힘입어 통과되는 우스운 모양새가 연출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