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제시 책 발간 건축가 조병수씨/지형·주민성향 무시 “온통 아파트”/공동체 파괴·도심 황폐화 심각/도시계획·주택설계 전면재고를「달동네」 재개발의 인간화를 주장하는 건축가 조병수씨(조병수건축연구소 장·40). 그는 최근 자신의 체험적인 달동네 재개발 과정을 기록한 「건축만들기」란 연구보고서에서 현재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서울시 등 대도시의 달동네 개발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서울의 달동네는 대부분 야트막한 구릉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특징이다. 주거의 형태에 있어서도 외형은 초라하지만 시골마을처럼 주민들의 인간관계 형성이나 거주공간 구성은 매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뤄져 있다.
이같은 달동네의 지형특성이나 주민성향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불도저로 밀어붙인 다음 담을 둘러치고 축대를 쌓아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대는 것이 요즘의 한결같은 개발방식이다. 이같은 개발은 달동네 주민들을 또다른 달동네로 떠돌게 하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조소장을 비롯한 건축가들은 달동네 지역의 공동체 파괴와 환경 및 미관 훼손으로 인한 도시황폐화를 막으면서 달동네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를 생각했다.
조소장은 아무리 좋은 구상이라도 현실에 못맞추면 이상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93년부터 작년까지 서울 정릉과 창신동의 달동네 지역을 건축가, 학생, 시공자, 구조담당자 등 각분야 건축관계자 20여명과 함께 집중연구해왔다.
이들은 달동네의 주택들이 낮은 창을 통해 연결되는 집안과 밖, 낮은 담장을 통한 옆집과의 커뮤니케이션 확보, 대문앞의 공용공간 확보 등으로 주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풍요로움이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성돼 있음을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조소장은 서울시 성동구 신당동 달동네 지역에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 다가구 주택 3가구를 직접 설계했다.
설계에선 달동네 주민들의 낮은 소득수준이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이었다. 건축비는 집장사들이 받는 수준인 평당 2백만원으로 책정했다. 재료 소모를 최소화하고 외벽마감도 거칠지만 오히려 자연스런 느낌을 주는 노출콘크리트를 썼다. 협소한 집이지만 지형이 높은 관계로 창문을 넓게 해서 좋은 조망을 확보토록 배려했다. 이 창문은 이삿짐을 옮기는 통로로 이용됐다.
그는 『세채의 다가구 설계가 비록 달동네 지역 전체를 개발하는 형식은 아니어서 한계는 있었지만 전체개발형식이더라도 원칙과 전제는 똑같다』고 강조했다. 바로 「친환경적, 친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소장이 설계시공한 신당동 박숙재씨 집은 대지 25평의 3층건물로 7가구가 함께 산다. 세든 6가구는 전부터 세들어 살던 사람들이다. 3층 가운데 2층까지 세를 주고서도 건축비를 다 뺐다. 조소장은 미국 몬태나주립대학 건축학부를 졸업(86년)하고 하버드대학에서 건축학석사와 도시계획학 석사학위를 취득(91년)한 후 독일 카이저스라우테른대학에서 2년간 한국의 주거문제에 관한 강의를 맡기도 했다. 연락처 (02)7648261
조소장은 『서구의 도시들도 금세기초의 난개발에 대한 각성으로 재개발의 재개발(Renewing Urban Renewal)이 한창』이라면서 『밀어 없애는 식의 쉽게 생각하는 재개발 정책은 이제 재고돼야한다』고 말했다.<박영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