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7월 3일] 맞춤형 공기업 선진화

정부가 이달 중순께 공기업 선진화 추진일정을 내놓고 세부화 방안을 8월 말께 발표한 뒤 9월 정기국회에 관련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출범 초기 공기업 민영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 같던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공기업 선진화로 표현까지 달리하며 새 윤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 선진화라는 개념이 등장한 저변에는 전기와 수도ㆍ의료보험 등을 민영화하면 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는 괴담이 심심치 않게 나돈 탓이 크다. 정부지분을 유지하면서 민간경영기법의 도입으로 경영효율화를 증대하면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복안도 거론되고 있다. 한국전력처럼 적정 매수자를 찾기 힘들거나 민간독점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분야가 여기에 해당된다. 요컨대 필요한 곳은 민영화에 나서겠지만 무조건 시장에 맡긴다고 국민에게 편익이 돌아간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다. 민간이 운영하면서도 최악의 서비스로 알려진 런던 히드로 공항이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방만한 지배구조나 감독체계를 개선해나가야 하는 공기업 선진화의 또 다른 방안은 기관 통폐합이다.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택지개발이나 주택건설에서 민간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고 오랫동안 저금리 시대가 이어졌던 상황에서 토공과 주공, 신보와 기보의 통합은 이미 해묵은 과제다. 특히 토공과 주공의 경우 공익성과 수익성의 양면을 충족시켜야 하는 공기업의 속성상 두 공사는 여러 면에서 중복업무를 피할 수 없었다. 극렬 반대에 나서야 하는 두 공사의 노조가 모두 통합을 전제로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 것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통합의 효과를 놓고 토공은 ‘선 기능조정 후 통합’을, 주공은 ‘선 통합 후 기능조정’으로 주장을 달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선통합론자들은 구조조정부터 하고 합치겠다는 것은 하지말자는 말과 같다면서 합쳐놓아야 중복사업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반면 후통합론자들은 인원과 부채가 더 많고 민간에게 이양할 사업이 많다고 먼저 통합부터 하자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주장한다. 양측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양측의 기능이 혼재돼 있고 서울시의 SH공사 같은 지방공기업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는 우선 기능재정립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최근 경기도가 택지개발에서 토공이나 주공을 배제하겠다고 밝힌 데서 보듯 앞으로 국토정책에서 중앙정부나 중앙공기업의 역할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추세라고 보면 통합에 앞서 공공과 민간부문, 중앙공기업과 지방공기업 사이에 명확한 역할분담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공공주택 부분은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하고 택지개발은 권역별로 이뤄지는 선진국의 사례도 감안할 수 있을 것이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통폐합을 전제하지 않고 우선 업무조정 등 각 공사의 군살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여진다. 운영ㆍ유지비로만 연간 23조원이 지출되고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기업의 선진화만큼 이명박 정부에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없다. 그러나 우정성 민영화에 앞서 수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치면서 부실채권 문제를 먼저 해결한 일본의 선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토공과 주공의 경우 통폐합을 확실하게 담보할 수만 있다면 기능정립과 구조조정을 마무리한 뒤 새로운 형태의 공기업을 설립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안에 따라 맞춤형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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