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기술유출 방지 시급하다

산업자원부 차관보 김종갑

‘스파이’하면 제임스 본드가 멋진 첨단무기와 액션으로 악당을 제압하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또는 좀더 지긋한 나이의 감성 있는 독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마타하리가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 어느 것이든 스파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범죄라는 부정적 느낌보다는 낭만과 스릴이라는 긍정적 이미지가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을 냉철하게 바라보자. 스파이는 범죄자다. 피해규모도 막대하다. ‘연간 2,500억달러의 손실, 연 5만명의 실업자 발생.’ 미국과 독일에서 산업 스파이에 의한 기술유출로 발생하는 각각의 피해규모다. 미국은 하이테크산업 매출액의 0.4% 정도를 기술유출로 손해 본다고 추정한다. 실리콘 밸리는 해외 산업 스파이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8년 2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의 타이완 유출을 적발해 예방한 피해액 규모가 6조원에 이르는 등 98년부터 지금까지 적발된 46건의 산업 스파이 피해 예방액은 38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적발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국내 기술유출의 주타깃은 우리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집중된다. 반도체ㆍLCDㆍ휴대폰ㆍ조선ㆍ자동차 등 우리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부문에는 어김없이 산업 스파이가 숨어 있다. 그 수법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 다양하고 지능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만 해도 20조원에 가까운 돈을 기술개발에 쏟아 부었다. 막대한 투자를 해 개발한 핵심기술에 대한 보호가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기업이 기술과 고급인력 유출에 대한 체계적 관리가 미흡한 실정이다. ‘기업 스파이 전쟁’이라는 책을 쓴 스티븐 핑크에 의하면 포천지가 선정한 1,000대 기업 중 56%가 산업 스파이에 의한 피해를 봤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 비춰볼 때 연구개발 성과를 높이는 데 쓴 관심에 비하면 기술유출 방지에는 우리 정부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서 해외유출 가능성이 있는 산업 및 경제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96년 10월에 ‘경제스파이처벌법(Economic Espionage Act)’을 제정하고 산업 스파이에 대해 신고할 경우 최고 50만달러까지 포상 가능하도록 법령을 마련한 상태다. 일본도 5월 경제산업성이 수립한 ‘신산업 육성전략’에서 영업비밀 보호 및 기술유출 방지 강화를 주요 이슈로 다뤘으며 지난해 2월에는 ‘기술유출 방지지침’을 제정해 제품별로 기술유출 방지계획을 세우도록 법제화했다.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무려 777만㎢에 이르는 땅을 정복한 칭기즈칸의 주요 성공요인 중 하나가 기술에 대한 중시다. 그가 점령지에서 최우선으로 확보한 것이 기술자들이었다고 한다. 싸우는 것만 전쟁이 아니라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전쟁이다. 기술전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며 모든 곳이 전쟁터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7위의 기술개발 투자국으로 성장했다. 국내 특허등록 건수는 세계 3위, 해외 특허등록 건수는 세계 12위에 달하고 세계 일류상품도 384개나 된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보안에 대한 의식수준은 한참 아래에 있다. 우리는 기술절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으로 인해 남의 디자인ㆍ상표ㆍ소프트웨어 등 지적재산을 마구 베껴 쓰는 일을 아직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문제는 이제까지 우리가 남의 것을 가져왔지만 이제부터는 남이 우리 것을 몰래 가져다 쓰는 시대가 왔다는 점이다.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돈으로 땀 흘려 개발한 기술이 남들에게 대가 없이 넘어가는 순간 우리 경제의 앞날도 좀먹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때다. 효과적인 기술유출 방지의 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막대한 기술개발 투자는 녹슨 파이프에서 새는 수돗물과 다름없다. 열 개의 기술유출 방지가 백 개의 신기술 개발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술유출 방지는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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