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특별기고] 제조물 책임법도입 신중해야

대한상공회의소 김효성 상근 부회장사회가 종래 공급자 중심 사회에서 수요자 중심 사회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되었다고 할 만큼 완벽한 소비자보호법을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또 기업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정보제공요청권이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정책을 심의·결정하는 각종 위원회에 소비자의 참여를 확대했고 최근에는 리콜제도에 관한 세부 절차를 마련, 그 제도를 활성화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한걸음 더나아가 정부는 원활한 소비자피해구제시책의 일환으로 올 소비자보호종합시책 중 제조물책임제도를 하반기에 도입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제조·판매업자측 광고에 의존하다보면 소비자들은 충분한 상품지식을 갖지 못한 채 상품 브랜드만을 신뢰해 제품을 구입하게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런 상품 공급자와 소비자간의 불대등관계를 시정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다각적인 소비자보호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조물책임법이 미치는 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와 영향을 생각하면 그 도입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 ; PL)이란 「제조물이 안전성을 갖추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제조물의 소비자·이용자 또는 제3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제조업자·판매업자 등 그 제조물의 제조·판매에 관여한 자가 지게 되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말한다. 즉 「과실책임에 결함책임으로」라는 구호에 나타나 있듯이, 제조자의 고의나 과실을 따지지 않고 제품결함의 존재와 결함과 피해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되면 피해액 전액을 제조자가 배상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소비자에게 적정한 피해보상을 제공하고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만 비용이 수반되며 미국의 경험을 통해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비용은 매우 클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자국기업이 외국기업에 비해 20∼50배나 많은 제조물책임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가격 중 제조물책임비용은 500달러인데 반해 수입차는 50달러에 불과하고 타이완에서 12달러에 불과한 간염백신 가격이 미국에서는 160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제조물 책임의 비용은 제품의 결함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대비한 보험료, 결함 여부에 대한 다툼이 있을 때 드는 법정비용과 제품시험·안전관리비용, 제품철회 등의 형태로 기업들에 부과되나, 긍극적으로 이 비용들은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소송의 남발에 의한 소송비용 증가, 엄청난 규모의 손해배상가액 등으로 소비자이익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 제조물책임비용의 증가는 또 제품안전도 제고를 위한 연구개발 노력을 강화할 유인을 제공할 수 있는 반면에, 신제품이나 새로운 제품디자인에 수반하는 위험을 제거 또는 부담하는 비용이 너무 높아 연구개발이 위축될 수 있다. 미국의 한 조사결과(CONFERENCE BARD)에 따르면 이 제도의 예측불가능한 성격과 과도한 책임비용이 기업의 연구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상당수의 기업이 제품의 생산·판매를 중단하였으며 신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제조물책임법은 필연적으로 안전성을 높이겠지만 우리나라의 공산품 품질관리수준이 아직도 최상급의 사업장에서 불량률 100PPM(1백만 개당 100개)을 목표로 하는 현실이므로 기술력과 품질관리가 취약해 충분한 대처능력을 갖지 못한 중소기업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 20년 준비 끝에 1995년에 이 법을 시생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미 훨씬 전에 이 법을 도입할 수 있었으나 나름대로 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최대한 도입을 늦췄다. 우리나라는 이 법의 도입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환경적 기반이 아직 미비하다. 이 법을 실시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의식적 선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조물책임관련 재판기구 미비 및 전문성을 갖춘 법조인력의 절대부족, 제조물책임보험의 미개발, 그리고 제조물결함 규명기관 및 전문인력 미비 등 이 제도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덜 성숙되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경제가 이제 겨우 IMF 충격에서 벗어나 경기의 저점을 통과 중이고 경쟁력을 회복하려면 2∼3년은 더 걸릴텐데 이런 상황에서 제조물책임법의 제정·시행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에 과도한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주게 되어 경기회복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소비자보호는 리콜제도, 소비자피해보상, 분쟁조정, 안전기준 강화 등 현행 각종 제도의 활성화로 그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제조물책임제도의 도입시기는 좀 더 신중히 결정되어야 하며 우리 경제가 성장의 본궤도에 오른 다음 도입해도 결코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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