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증권사 임원은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추진해오던 한국형 투자은행(IB) 도입논의가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됐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한국형 IB 도입이 본격 추진된 것은 1년 전인 7월 말부터다. 당시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증권사에 IB 업무를 허용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대형 증권사에 기업대출을 허용하고 헤지펀드에 자금과 주식을 빌려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프라임브로커(PB)서비스를 허용해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대형증권사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활로를 터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회 통과는 고사하고 총선으로 국회가 새로 구성되면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조차 대선이슈에 묻혀 잘 진행되지 않고 있다. 대선이 끝나도 바로 논의가 재개될지는 불투명하다. 1년째 제자리 걸음해온 한국형 IB 도입논의가 더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형 IB 도입을 위해 1년 허송세월을 하는 동안 외국계 IB들은 명성과 자본력으로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을 더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스몰딜은 글로벌 회계법인이 저가수수료를 내세워 잠식하고 있어 국내 증권사 IB들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업계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만 급급한 실정이다. 다른 증권사 임원은 "한국형 IB 도입과 관련 업계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고 연말 대선을 의식해 당국이나 업계가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대선을 맞아 여야가 민생법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한국형 IB 도입에는 무관심하다. 증권사들이 자본시장법 통과를 기대해 자기자본을 대폭 증액해놓고도 법적 근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국회가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글로벌 자본시장 경쟁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성공 없이는 더 이상 국부를 창출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하루빨리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