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경쟁력이 바로 국가경쟁력입니다.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국민들에게 믿음이 가는 교육개혁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초 신년 국정연설에서 올해 정부의 핵심 과제로 일자리와 교육을 꼽았다. 창의적 인재육성, 공교육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까지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장밋빛 교육의 청사진을 보여주며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후 ▦대입 3단계 자율화 ▦교장공모제 ▦학교자율화 ▦마이스터고 육성까지 굵직한 정책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결과물은 신통치 않다. '기업맞춤형 인재육성'이라는 근본목표는 인재육성 정부 사업이 부처별로 흩어지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교육ㆍ인재 관련 관료들의 잇따른 비리에 정책들은 추진력을 상실했다. 무엇보다 교육개혁 대책들은 지난 십수년간 되풀이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정부 정책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교육정책이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는 이유다.
◇의욕만 넘치는 교육개혁=이 대통령의 야심 찬 신년 국정연설이 있은 지 석 달 만인 지난 3월17일. 처음으로 열린 교육개혁대책회의에서 정부는 교육비리 근절대책, 교원평가제 조기정착, 글로벌 수준의 박사양성책을 내놓았다.
불과 한 달 뒤 창의성과 인성 함양 대책이라면서 교과학습 내용 20% 이상 감축, 내신평가시 서술형 평가 확대, 입학사정관 전형 확산 등이 쏟아졌다. 교사들의 공문처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순회교사 및 인턴교사를 도입하겠다는 대책도 등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교과부가 속도전으로 쏟아낸 대책에 대해 일종의 기시감을 느끼고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수십년간 반복돼온 정책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향후 3년간의 정책과제를 보면 이 같은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교장공모제, 농산어촌 전원학교, EBS 수능시험 연계, 체험활동 프로그램 등은 이미 10년 전부터 나온 정책들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정부에서 반복하고 있다. 학부교육 선도대학, 대학원 교육 선진화 등도 김대중 정부 시절에 나온 BK21정책 이후 수없이 쏟아진 대학지원책의 연속선상에 있지만 기존 대책들과의 차별성을 찾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대책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무엇보다 정책이 현장에 제대로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신현석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 문제는 정권 차원에서 정책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는 있어도 정부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처방을 내릴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중앙으로부터 시범을 통한 하향식 모델링 방식이 아닌 단위학교로부터 자체 혁신을 통한 상향식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리저리 흩어진 인재육성책=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중소기업 현장을 방문해 "비실용적인 교육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며 현장에서 필요한 인재를 육성할 정부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재육성 관련 정책들을 통합 관리할 변변한 주무부처 하나 없다는 것이다. 교육정책은 교과부가 맡고 있지만 직업능력개발을 위한 인재육성은 고용노동부가, 정보기술(IT) 및 연구개발(R&D), 원자력 등 개별 신산업 인재육성은 지식경제부가 각각 맡고 있다. 심지어 국토해양부는 U시티 및 고급 건설인력 양성에 뛰어드는 등 개별부처들이 흡사 '내 영역 인재는 내가 키운다'는 식의 인재육성책을 내세우고 있다. 시너지 효과는커녕 효율적인 예산집행조차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정과제로 인재육성 및 교육을 중시하다 보니 개별 부처들이 너도나도 인재육성 사업을 가져와 예산을 따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개별 사업마다 최소 수백억원씩은 들어가는데도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대책을 내놓은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청년실업이 나타나는 근본적 원인이 산업수요와 대학교육 간 미스매치 현상인데 부처 간에 업무가 달라 이 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있다"며 "교육 시스템 개선과 산업현장의 개혁을 아우를 수 있는 융합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저하다 때를 놓친 '뜨거운 감자'=우리 교육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이른바 '3불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대학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다. 정부출범 초기 자율화의 바람을 타고 추진될 것으로 예상됐던 3불정책 해금은 적어도 현정부에서는 물 건너가게 됐다. 워낙 뜨거운 정치적 이슈이기 때문에 건드리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지만 결국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는 3불정책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며 "좌우로 나뉘어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뭐가 옳고 그른지를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기여입학제만 해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제한된 기여입학을 허용한 뒤 장학지원을 늘리고 학교재정을 살찌워 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차원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마무리 짓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논의 자체는 시작하고 연구라도 풍부하게 해놓아야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과 구체적인 정책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