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死卽生)의 각오 그 자체였습니다. (현재현 회장의) 뚝심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동양그룹이 삼척 화력발전소 사업을 단독으로 수주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21일.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 회장은 그룹의 명운을 걸고 이번 삼척 화력발전소 수주전에서 야전 사령관을 자처했다"며 "현 회장의 또 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현재현(사진) 동양그룹 회장. 그는 지난해 혹독했던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것이다. 당장의 수익모델도 그렇고 그룹의 미래를 담보할 비전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 회장은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지난해 말 "건자재와 가전사업부를 매각해 시멘트와 에너지∙금융 중심의 사업구조로 개편하겠다는 제2의 창업 청사진"을 밝힌 것. 한마디로 건자재와 가전을 분리하는 아픔을 통해 새로운 동양으로 탄생하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이다.
에너지 사업에 미래를 건 현 회장의 첫 작품은 다름 아닌 삼척 화력발전소. 하지만 첫걸음부터가 쉽지 않았다. 참여의사를 밝힌 것 자체가 경쟁기업인 STX와 포스코에 비해 늦었다. 그래도 현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현 회장은 임원들에게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자. 늦지 않았다. 여기에 그룹의 운명이 걸려 있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는 것은 임원들의 이야기다. 그는 동양시멘트 본사를 지난 2011년 9월 삼척으로 이전했다. 삼척시의 요청도 있었지만 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동양은 2개월 뒤 동양시멘트 46광구 부지에 2,000㎿ 이상 규모의 대형 발전단지 건립안을 제시했다.
한발 더 나아가 현 회장은 경영수업 중인 외아들 현승담 상무보를 삼척 현지에 보내 화력발전 수주작업을 현장 지휘하도록 했다.
현 회장의 이 같은 노력에 삼척시민들도 감동했다. 지난해 10월 말 삼척 화력발전소 건설 의향서 제출 당시 삼척시민들은 동양그룹에 97%의 동의율을 보이며 지지했다. 경쟁업체들이 80%대 초반의 동의를 얻은 것과는 큰 차이였다. 일부에서는 삼척시가 동양을 밀어준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으나 현 회장의 뚝심과 동양의 하나된 노력이 결국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현 회장이 건자재와 가전을 매각하고 에너지에 주력해서 그리려는 동양의 발전모델은 무엇일까. 현 회장은 이에 대해 "대만의 TCC그룹"이라고 말한다.
TCC그룹은 1946년 설립된 대만 최대 시멘트 회사로 주력인 시멘트를 시작으로 환경과 에너지 분야까지 사업영역을 넓혀왔다. 대만 화롄의 허핑 화력발전소와 TCC 화롄공장은 동양이 계획하고 있는 삼척 화력발전소의 모델과 유사하다. 시멘트 공장과 인접한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를 시멘트 제조에 쓰이는 원료로 사용해 처리비용을 줄이고 환경훼손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지난해 말 발표한 동양의 '제2 창업'을 위한 로드맵도 TCC그룹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동양의 한 관계자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시멘트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변동과 글로벌 경기 변동을 예의주시하며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현 회장도 TCC그룹을 직접 방문하는 등 일찍부터 깊은 관심을 보이며 벤치마킹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이 제 살을 깎아내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면서까지 화력발전 수주에 역량을 집중한 결과"라며 "재무구조 개선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동양이 회생하는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