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도피중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미국 경제주간지 포츈지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고 `폭탄 발언, 파문이 일고 있다. 워크아웃 직전 김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잠시 떠나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전회장이 미스터리에 싸인 대우몰락과 해외도피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주장이 해외도피 상태에서,그것도 정권말기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대우몰락과 김 전회장의 해외도피 과정 등에 대한 진실규명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 된다. 이를 위해서도 김 전회장은 해외에서 `변명`과 대우몰락에 대한 `정치적 음모`만을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귀국에서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 이는 김 전회장의 의무이기도 하다.
대우그룹이 몰락한 후 많은 임직원들이 부실경영 등의 이유로 수조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하고 일부는 형사책임까지 져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의 진원지지라고 할 김 전회장만이 책임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포츈지의 보도에 의하면 김 전회장은 유럽과 아시아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골프를 즐기고 있다. 한 그룹을 이끌었던 최고경영자로서 무책임한 자세다.
김 전회장도 자인했듯이 대우그룹의 `세계경영`은 지나치게 규모가 컸고 빨랐다. 규모의 경영을 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자신의 말대로 자동차에 너무 야심을 품은 것이 좋은 예다. 능력에 걸맞지 않게 사업을 하다 보니 여당과 정부 고위 공무원 등에 로비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김 전회장은 정경유착의 한 상징으로 떠올랐고,이에 따라 정치자금 수수의혹이 뒤따르기도 했다.
이러한 부실경영과 각종 부정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김 전회장에 있다. 그렇지만 정부도 김 전회장의 발언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김 대통령이 전화를 했고 고위 관리들이 설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는 없지만 그냥 부인만으로 덮을 수 없게 됐다. 진실 규명도 하고 정부가 그를 체포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도 그의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김 전회장이 해외에서 계속 변명과 주장을 되풀이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한국의 대외 이미지는 물론 정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두렵다. 재계는 벌써부터 정경유착 등의 불똥이 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김 전회장도 자진 귀국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겠지만 정부도 책임지는 사회풍토 조성,부정부패 추방,투명경영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김 전회장 체포를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 된다.
<김호정기자 gadget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