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는 선이고 정부가 하면 악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이분법이지요." 4만3,600명의 직원과 3,680개 우체국을 거느린 우정사업본부. 군과 경찰ㆍ교사를 제외하면 정부 내 최대 단일 행정조직의 총수. 27일 서울경제신문과 단독으로 만난 남궁민(53) 우정사업본부장은 정부가 여전히 만지작거리는 우정본부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작심한 듯 심정을 토로했다. 상냥해 보이는 외모를 잊게 만들 정도로 격정적인 어투였다. 남궁 본부장은 "택배ㆍ금융ㆍ보험 등 우본이 하는 사업들이 민간과 겹치는데 왜 정부가 계속하느냐"는 민영화 찬성 측의 주장을 우선 말머리에 올렸다. "민간이 다 하고 있으면 정말 안 합니다. 그런데 다 합니까. 농어촌과 도서지역 군(郡) 단위 이하에서는 (민간이) 안 합니다. 은행ㆍ보험회사ㆍ택배회사들이 거기 있습니까." 목소리는 조금 더 빨라졌지만 설득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민간은 적자 나면 안 해요. 수익을 위해 조직과 인력도 줄이지요. 그럼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봅니다. 실패한 일본의 우정 민영화가 그 증거예요." 남궁 본부장은 '사회안전망'으로서 우본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으로서 1만6,300여명의 집배원을 비롯한 전직원이 가진 책임감이 모여 사회안전망 역할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제가 이 자리 온 지 6개월 됐는데 직원들이 강도 잡고 불 끄고 환자 수송하고…, 그런 선행이 80건을 넘어요. 시골 노인들 말벗 하고 집안일 도운 것은 셀 수도 없습니다. 민영화하면 이런 일을 민간이 할까요." 그의 눈이 뜨거워졌다. "전국 방방곡곡 매일 한 바퀴씩 돌며 국민과 한가족같이 느끼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겁니다." 11년 연속 흑자기관으로서의 억울함도 토로했다. "적자가 나서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흑자를 내야 한다면 '공사화든 민영화든' 이해합니다. 하지만 11년 연속 흑자입니다. 지난해에는 1,000억원 이상 벌어 나라 창고에 넣었고 올해도 흑자가 날 겁니다. 이런 성과를 평가는 못 해줄망정…."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천장만 봤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권에서 고위관료가 민영화 반대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해도 되는지…, 기자도 놀라 입을 다물었다.) 혹시 해서 "우본 민영화는 이미 완전 접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정부가) 접은 것은 아니고 논의 자체를 일단 하지 않고 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침묵을 깨려고 경기로 말을 돌렸다. 그제서야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경기침체가 오면 기업들이 우선 홍보용 대량 우편물을 줄입니다. 연초만 해도 지난해보다 우편물이 7~8% 이상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는데 감소폭이 2%선에 머물 것 같습니다. 경제 회복세가 예상보다 강해요." 우본의 연간 우편처리 물량은 2002년 55억통으로 정점에 올랐다가 지난해 48억8,300만통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그는 "우편 물량은 줄었어도 단가가 높은 등기우편, 해외특송(EMS) 이용이 급증해 올해 전체 수입은 2~3%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우본의 자금운용 전략도 공개했다. 우본은 예금 44조5,000억원, 보험 27조1,000억원 등 약 72조원(2009년 9월 말 기준)의 자산을 굴리는 금융시장의 큰손이다. 우본의 꼼꼼하고 안정적인 자산운용이 금융위기 때 빛을 발해 올해 예금과 보험 유치 증가율은 지난해의 2~3배를 기록했다. 남궁 본부장은 딱딱하게 말했다. "변동성 높은 장세가 예상돼 기존 투자분은 우선 수익을 실현하고 신규 투자는 박스권 매매가 가능한 펀드에 해야지요. 연초에 비해 주가가 많이 올랐으니 일단 관망했다 시장 방향성을 보면서 투자할 겁니다." "경기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한 그는 "채권투자는 금리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신중했고 "중기적 관점에서는 경기회복을 내다보고 원자재 연계상품에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프로필 ▲1955년 강원 홍천 ▲춘천고, 서울대 법대 졸업▲미콜로라도대 이학석사 ▲행시 24회 ▲1982년 춘천우체국 통신과장 ▲1993년 제천우체국장 ▲1997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실 파견 ▲2003년 강원체신청장 ▲2004년 정보통신부 감사관 ▲2007년 우정본부 금융사업단장 ▲2008년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 ▲2009년 우정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