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 고객 서비스가 위축되는 기업들이 많은데 불황기야 말로 고객 서비스의 질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최영재 LG홈쇼핑 사장의 말이다. 그 동안 무섭게 성장해 온 홈쇼핑 업계가 불황을 맞아 매출이 줄거나 증가 폭이 둔화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불황을 오히려 기업 점검의 기회로 삼아 재도약을 하겠다는 뜻이다.
후발 업체인 현대홈쇼핑의 강태인 사장도 같은 의견이다. 강 사장은 지난 달 23일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홈쇼핑 후발 업체 중에서 처음 실시하는 자리에서 “고객에게 외면 받는 기업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며 윤리 경영을 통해 선두권 진입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홈쇼핑 업계는 각 회사를 이끌고 있는 수장부터 `불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불황으로 인해 선발 업체는 성장세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후발 업체는 쫓아가는 입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유지해야 함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실망하고 있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장기적인 안목에서 내실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홈쇼핑은 다른 유통업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황에 강한 산업으로 인식돼 왔다. 95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후 걸음마 단계인 출범 2년 만에 IMF라는 엄청난 복병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매출은 연 5~10배씩 늘었으며 지난 해엔 선발사인 LG홈쇼핑과 CJ홈쇼핑이 각각 1조8,000억원, 1조4,000억원의 매출을 낼 정도로 상상 이상의 발전을 했다. 95년 당시 양사의 연 매출이 각각 13억원, 21억원이었으니 성장은 과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IMF때보다 더 하다`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소비심리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 현재의 불황 앞에서는 홈쇼핑 업계도 마냥 당당할 수 없었다.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 비해선 위축의 정도가 덜하지만 지난 8년 간의 성장 후 숨 고르기를 할 시점에서 만난 불황에 발목을 단단히 붙잡힌 것이다.
올 들어 선두 업체인 LG홈쇼핑이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자 업계 전체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LG홈쇼핑을 바싹 추격하던 CJ홈쇼핑도 소폭 성장에 그쳤다. 후발 업체인 현대, 우리, 농수산은 30~50%의 성장률을 보이긴 했지만 선발사 추격에 있어 한 순간도 아까운 마당이라 불황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케이블 TV 시청 가구수 증가세도 한계점에 다다르면서 더 이상 신규 고객 확보로 인한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도 없게 됐다.
하지만 홈쇼핑 업계에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각 업체들은 이 불씨를 매개로 큰 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 개별 업체의 매출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업계 전체 매출은 상반기에 2조3,181억원에 달하며 지난 해 동기보다 14% 이상 신장,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선발 업체인 LG홈쇼핑, CJ홈쇼핑의 경우 이제는 신규 고객 확보보다는 기존 고객 모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LG홈쇼핑은 올 초부터 ERP, CRM 등 고객 및 자원 관리를 위한 전문적인 시스템 가동에 들어갔다. CJ홈쇼핑도 비슷한 시스템 가동을 위해 현재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배송, 반품, 고객 관리 등에 힘을 쏟아 선진적인 유통업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경영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겠다는 게 두 선발 업체의 입장이다.
이 두 업체는 소비자 보호 정책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 동안 가공할 만한 매출 호조 속에서 성장에만 급급해 왔으나 이제는 책임을 질 줄 아는 `큰` 유통업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다.
현대홈쇼핑의 경우 획기적인 상품 개발로 불황과 전면전에 나서고 있다. 광고 카피까지 `상품으로 말한다`로 정했을 만큼 현대홈쇼핑의 참신한 상품들은 다른 업체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올해 선보였던 해외취업상품, 크루즈 여행상품, 매술품 경매 등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홈쇼핑은 불황기 선발 업체가 주춤한 틈을 타 상품력, 최근 통합한 Hmall 등을 통해 본격적인 경쟁에 나서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홈쇼핑, 농수산홈쇼핑도 불황엔 백화점의 화려한 상품보다 가격 거품이 적은 우수한 중소 업체의 상품, 직거래를 통한 농수산품 등이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워 상품력으로 불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