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독립된 '재정건전원' 만들자


인류 역사는 큰 사건을 경험하면서 발전하고 진화해왔다. 하지만 큰 사건을 겪고도 아무런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지 않으면 사건은 반복된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통화정책은 독립된 기구에서 관장해야 하고 과도한 예금 인출 사태를 방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독립된 중앙은행과 예금보험공사 제도를 도입했다. 정치권 포퓰리즘 제어장치 필요 최근 세계는 다시 재정 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했다. 그간의 많은 위기들은 자산가격 거품 붕괴나 외환 부족으로 일어났으며 국가의 도움으로 해결돼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개인도 기업도 아닌 국가가 너무 많은 빚을 져 갚지 못하거나 그럴 처지에 놓여 위기가 발생했다. 국가의 곳간은 누군가가 세금을 내 채워야 한다. 세금이 걷혀야 도로를 만들고 가난한 국민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세금을 너무 많이 매기면 투자ㆍ근로의욕이 떨어지거나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세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따라서 세수 범위 안에서 알뜰하게 살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가의 수입ㆍ지출은 좁게는 정부, 넓게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을 대리해 관리한다. 하지만 사회정의나 복지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나라 곳간을 더 많이 퍼주겠다는 사람들이 국회의원과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권력을 차지한다면 국가 부채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차와 같이 언젠가는 한계에 이르고 파국을 맞게 된다. 많은 국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거나 적게 낼수록, 포퓰리즘 권력과 국민이 야합할수록 그 가능성은 커진다.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경제성장으로 세수가 증가하거나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지만 지출을 줄이면 세수 감소→재정 적자 확대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부득이 복지ㆍ사회보장성 지출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되고 국민적 저항이 만만찮아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더 늘리겠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재정 위기에 시달리는 남유럽이 그랬다. 세수에 비해 과도한 복지를 내세우며 빚을 자꾸만 끌어들였다. 유럽형 복지는 가장 아름다운 제도로 칭송받았지만 빚이 너무 많아져 세수로는 이자조차 갚을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남유럽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발생하자 글로벌 재정 위기가 닥쳤다. 국가부채는 쓰는 사람과 갚는 사람이 다르고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줄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해당 국가는 물론 우리나라도 이 같은 위기 재발ㆍ발생을 막기 위한 제도를 도입, 민주주의와 재정 건전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공황 때 독립된 중앙은행제도를 도입했듯이 어떠한 정치권력도 좌지우지할 수 없게 해 재정 건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재정건전원' 같은 강력한 국가 재정 통제 기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잠재 성장률과 세수, 국민 조세 부담률, 성장ㆍ복지ㆍ안보 등 부문별 재정 지출과 지속 가능한 재정 수지 및 정부 부채를 추정ㆍ전망하고 이를 토대로 중장기 재정계획을 수립하며 특별한 외부 돌출변수가 없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범위를 초과하는 지출을 할 수 없도록 강력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기구 말이다. 정권 바뀌어도 재정건전성 담보 그러려면 한국은행 총재처럼 임기 중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원장을 해임할 수 없는 독립된 기구여야 한다. 필요하면 헌법기관으로 할 수도 있다. 재정건전원 안에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재정건전위원회를 둬 중장기 국가 재정정책의 기본 틀을 결정하고, 기획재정부가 이렇게 결정된 중장기 국가 재정계획 범위 안에서 세제를 개편하고 예산을 편성ㆍ집행한다면 민주주의와 재정 건전성의 조화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철을 앞두고 과도한 복지 논쟁과 포퓰리즘으로 혼란스러운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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