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은 밀어주고, 국내기업의 갈 길은 막고…`
국내 기업들이 외국기업에 비해 투자, 고용, 공장설립 등 기업환경 전반에 걸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정작 `자기식구`는 홀대한다는게 재계의 불만이다. 물론 이 같은 홀대가 외국기업들을 국내로 끌어들이는데 일조한 면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국내기업들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발목을 잡고 있다는게 문제다. SK㈜ 사태에서 보듯이 기업들이 생산적인 부문에 돈을 투자하지 못하고 재무관리에 치중하다보면 결국 한국기업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P투신운용 K사장은 “정부가 국내기업의 출자 확대를 봉쇄하면서도 외국자본의 국내기업 주식 매입에 대해서는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이런 차별적 규제는 국부유출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기업의 경쟁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기업규제는 같은 잣대 적용해야=국내 기업들의 불만은 외국기업들은 정부 규제에서 자유로운 반면 자신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승철 전경련 상무는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제상 혜택을 주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내기업도 국제적 수준에 맞게 풀어주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우리기업의 경쟁기반은 약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가 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보자.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외국기업이라도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으면 출자총액제한 대상기업이 된다. 그러나 국내에 5조원 이상을 투자할 외국기업은 많지 않다. 대다수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 및 판매거점을 전세계적으로 분산시키기 때문에 본국을 제외하곤 특정국가에 이 같은 엄청난 투자를 집행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융회사 보유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는 국내기업들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 KOTRA 관계자는 “선진국들도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현금보조금 등의 인센티브를 활용하지만 독과점, 소비자보호문제 등 다른 경영환경과 관련된 제도는 국내 및 외국기업을 가리지 않고 같은 잣대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차별적 규제, 경영성과차이로 이어져=국내기업은 일단 공장설립, 고용 등 여러 면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정부는 최근 관계부처간의 협의를 거쳐 LG필립스LCD의 파주공장 설립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파주, 남양주, 동두천 등 경기 일원은 성장관리권역이다. 성장관리권역에는 올해 말까지 외국인투자기업만이 공장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전경련 관계자는 “삼성전자도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려고 했지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이런 역차별이 기업의 해외이전을 촉발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문도 마찬가지다. 국내기업은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체 고용인원 가운데 3~8%를 국가유공자를 채용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기업은 예외다.
이밖에 법인세 및 소득세, 준조세 감면, 행정지도 등 여러 면에서도 외국기업들은 `치외법권`이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행정지도 등 법률적 근거가 없는 규제까지 포함할 경우 국내기업들의 경쟁여건이 외국기업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한국기업의 수익성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소적 규제는 과감히 폐지해야=IMF 이후 국내기업의 투명성은 국제적 수준이 됐다.공시제도강화, 지분법 평가 등을 통해 시장에서 기업의 경영투명성, 경영성과 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만큼 기업경쟁력을 저해하는 규제는 과감히 폐지해야 할 때가 됐다. 이형만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기업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로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자산 2조원 이상인 기업 이사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사외이사 선출, 대주주 의결권 제한조치 등을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도 “외환위기후 정부가 각종 제도를 바꾸면서 기업의 글로벌경쟁력을 저해하는 독소조항들을 무조건 받아들인 경향이 있었다”며 “당국도 SK사태를 계기로 이를 보완ㆍ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문재,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