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터뷰 섹션 'Lunch with the FT'에 31세 청년 탈북자의 얘기를 실었다.
살을 에는 추위가 고문으로 생긴 화상 흉터를 파고들던 2005년 1월2일. 신동혁씨는 '14호 수용소'를 탈출했다. 1982년 신씨가 태어나 자란 북한 개천시의 14호 수용소는 정치범들이 감금돼 강제 노역을 하는 곳이다. 그의 원죄는 탈북 시도자 2명을 삼촌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씨는 항상 굶주렸다. 배급된 음식은 옥수수ㆍ배추죽 정도였고 감시병의 허락을 받고서야 생쥐ㆍ곤충 등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마음껏 먹을 자유"를 위해 철조망을 넘은 신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탈출에 성공한 유일한 탈북자로 지금은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전세계에 알리는 활동가가 됐다.
'Lunch with the FT'는 지난 1994년 첫 선을 보인 후 주로 전세계 유명 인사와 점심을 함께 하며 그들의 삶과 생각을 독자에게 전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ㆍFed) 전 의장, 영화 배우 안젤리나 졸리 등이 대표적인 인터뷰 주인공이다.
신씨 얘기가 FT를 통해 전세계에 전해질 때쯤 한국에서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이 터졌다. 국회 입성 때부터 '종북'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이끄는 소수의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조직원들과 함께 통신ㆍ유류시설 등 국가기간시설 파괴와 인명 살상을 위한 총기 확보 등을 모의했다는 게 현재까지 나온 수사의 대강 줄거리다.
한참 철이 지난 교조주의 사상에 매몰돼 북한을 이데아처럼 숭배하는 세력들에게 "재봉틀을 떨어뜨린 벌로 중지 손가락을 잘렸다"는 신씨 경험은 애써 믿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가장 권위 있는 외신 중 하나로 꼽히는 FT가 파격적으로 한 페이지를 할애해 신씨의 지옥 같은 경험을 실은 것은 북한의 인권 유린이 너무나 심각하고 국제사회가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과거의 미망에 사로잡힌 듯한 이석기 의원과 그들 집단의 행태에 허탈함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방인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북한의 참상을 우리가 외면하고 잊어버린다면 제2, 제3의 신동혁과 이석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