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산업현장의 중소기업인들을 직접 만나보면 담보대출을 요구하는 금융권의 관행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아요. 이런 분들을 위해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사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주는 일을 바로 기술보증기금이 하고 있습니다. 기보의 핵심사업인 '기술금융'이 바로 박근혜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창조경제'이자 '창조금융'인 셈이지요." 1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자리한 집무실에서 만난 김한철(59·사진)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기존의 생산경제를 대체하고 지식경제의 진화된 형태인 창조경제가 확산되면서 급격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며 "이에 발맞춰 금융산업의 메커니즘이 바뀌어야 하는데 기술금융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초 35년간 몸담았던 산업은행을 떠나 기술보증기금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 이사장은 무엇보다 기술평가가 금융지원의 중심축에 있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기보의 존재를 모르는 중소기업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최근 경기 지역 이노벤처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다들 한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게 기보가 홍보를 잘해야 한다더군요. 기술 기반 중소기업들이 창업한 후에 기댈 곳은 기보가 유일하다시피 하지만 기보가 있는지도 몰라서 제대로 지원을 못 받는 업체가 수두룩하다는 말씀이셨어요. 그런 측면에서 제가 이사장으로 해야 할 역할과 방향은 명확합니다. 창조경제의 중심축으로 기보의 위상을 제대로 잡아갈 것, 기술평가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기업들이 혜택을 보게 하는 '기술금융의 전도사'가 되는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기술금융이 보다 확산되기 위해서는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달을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아니라 달에 직접 갈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겠다는 역발상, '혁신적 사고 방식'을 뜻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패러다임 전환기에 기술평가를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기보의 기술금융 업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인 동시에 사회 전체적으로 기술평가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사에서 근무하다가 본사로 돌아온 지난 1998년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 산업은행이 주축이 돼 기금을 조성해 벤처투자에 과감하게 나섰어요. 물론 개중에는 원금 회수조차 못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 당시 뿌려놓은 벤처투자가 지금의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당시에 관련 업무를 하면서 될성부른 벤처기업의 떡잎을 가려낼 수 있는,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기보 임직원들이 무거운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를 해야 할 겁니다. 이를 통해 기업에 대한 투자와 보증이 이뤄지는 거니까요."
실제로 기술금융 분야에서 기보의 역할과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국내 기술금융 공급 규모 26조원(지난해 말 기준) 가운데 기보의 기술보증과 이에 기반한 대출 형태가 19조4,000만원으로 72.8%를 차지한다. 이는 시중은행 등 민간 영역에서 아직까지 기술금융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기술금융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확한 평가 시스템 구축이 선결과제다. 그런 점에서 기술금융의 맏형 격인 기보의 기술평가시스템(KTRS)은 과거의 신용도나 재무정보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기술평가 결과만을 놓고 심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확보하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지원 방식인 물적담보 기반 대출과 IMF 당시 도입된 신용평가 시스템에 의한 신용담보대출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김 이사장은 "2005년 국내 처음으로 자체개발한 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노하우를 축적하면서 미래 성장 가능성과 사업 부실화 위험을 동시에 평가하는 기술평가 메커니즘이 자리를 잡게 됐다"며 "특히 담보가 없거나 신용이 축적되지 않아 제도 금융권에서 소외된 기술창업 중소기업들을 발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시스템으로 매출이 전혀 없는 기업에도 신규 보증 비중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보의 신규 보증 비중은 2012년 8.2%에서 올 7월 말 현재 10.7%까지 확대됐다. 올해 총 보증 규모도 연초 계획 대비 5,000억원 늘어난 20조2,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신규 보증에 3조1,000억원(7월 말 현재)이 투입된 상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술평가 시스템를 통해 재무구조는 취약하지만 기술력과 사업성이 우수하다고 평가 받은 기업에 대한 보증 규모를 매년 늘려나가고 있는 점이다. 재무등급 B등급 이하 기업들의 신규 보증 비중이 2011년 37.5%에서 지난해에는 43.2%, 올 들어서는 7월 말까지 46.9%에 달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기보의 향후 핵심사업이자 블루오션으로 '기술신용정보 제공기관(TCB·Tech Credit Bureau)' 사업을 꼽았다. 이는 기술신용정보를 산출해 은행에 제공하고 은행이 이 정보를 여신심사에 반영해 신용담보력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은 우수한 중소벤처기업들을 집중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TCB 평가기관으로 기보와 한국기업데이터(KED)·나이스평가정보 등 3곳이 선정됐는데 이 가운데 공공기관으로는 기보가 유일하다"며 "은행들도 기술금융의 미래 성장성을 내다보고 자체적으로 기술평가팀도 만들고 있지만 인력과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고 활용도 측면에서도 매우 비효율적인 만큼 기존 TCB 평가기관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운용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술금융이 탄탄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은행권에 사실상 할당제를 적용하는 등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이 우수한 은행에 정책금융 자금배정 혜택과 조달금리 인하, 이차(利差)보전 등 각종 인센티브를 몰아줘 실적이 나쁜 은행과 격차를 완전히 벌려놓는 강공까지 활용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김 이사장은 7월 조직개편을 통해 중앙기술평가원 내에 전문분야별 박사급 인력으로 구성된 5개 팀, 10명 규모의 평가지원팀을 별도로 꾸렸다. 기술신용평가보고서가 외부에 공개되기 전에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이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시중은행들이 아직까지는 중소기업 기술평가에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위험도는 높아지기 마련"이라며 "그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보는 현재 보유한 기술평가 시스템을 더욱 진화시켜서 기술금융이 뿌리를 내리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보 수장으로서 가장 아쉬운 점은 역시 인력과 재원이다.
"신용보증기금과 비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인원 수가 신보의 절반밖에 안 됩니다. 기술금융에 대한 보증기관인 만큼 기술평가를 정확하게 하기 위해선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아직까지 부족한 형편이지요. 중소기업인들이 가까운 곳에서 기보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넓히는 일도 매우 중요한데 지금의 예산과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그런 부족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해결해가면서 기보가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He is… |
기계·전자 박사 등 전문가 540여명 … '기술평가 인재의 산실' ■ 기술보증기금은 |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