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양 창평면 삼지천 마을, 완도 청산도, 하동 평사리 들판(왼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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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고인돌유적지, 강진 사의재, 여주 강천습지(왼쪽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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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길을 따라 걷는 여행을 떠난다. 도보 여행은 출발과 도착이 아닌 걷는 과정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 교수는 ‘걷기 예찬’이라는 책에서 정신적인 시련은 걷기라는 육체적 시련을 통해 치료할수 있다고 예찬했다. 그는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을 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간다”고 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에세이 작가 피에르 쌍소도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9가지 태도 중 첫번째로 ‘한가로이 거닐기’를 꼽았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느림의 미학’이 마침내 여행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푸석푸석한 흙 길을 천천히 걸으며 혹은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지나가는 풍경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길 위로 여행을 떠난다. 지도에 표시된 곳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여행에도 출발지와 도착지만 있는 게 아니다. 여정 사이 사이에서 숨쉬는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시간과 공간의 교차 속에서 내면의 자신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시련도 내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 여행은 점과 점의 시공간이 아니라 선이 만나 이뤄내는 시공간의 합작품인 셈이다.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산티아고 가는 길’로 더욱 유명해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길 위로 떠나는 여행지로 일찌감치 알려진 길이다. 800㎞에 이르는 산티아고 순례길(세계문화유산 1호)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대인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기까지 옛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긴 여정이다. 산티아고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얻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우리나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길들이 많다. 제주도에는 ‘놀멍 쉬멍 걸으멍 간세다리가 될수 있는’(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게으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올레길이 벌써 14개 코스나 열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남 강진ㆍ영암의 ‘삼남대로를 따라 가는 정약용 남도 유배길’, 미당 서정주 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인돌과 질마재 따라 100리길’ 등 7곳의 문화생태 탐방로를 복원한다. 전남 신안군 증도, 완도 청산도 등 5곳의 슬로 시티는 쉬엄쉬엄 걷는 도보 여행의 묘미를 가장 만끽할수 있는 곳이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누구나 각박한 도시를 벗어나 삶의 쉼표를 찾아 떠나고 싶어한다. 때마침 환율과 경기 등의 부담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국내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 시끌벅적한 휴양지보다는 옛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길에서 걷고 사색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성찰의 도보 여행길’에 나서 보자. 이번 휴가의 주제는 천천히 걸어보기, 느리게 살아보기다.』
● 느려서 아름답고 불편해서 즐겁다 '슬로시티'
시간의 유배지로 떠나는 '자발적 귀양'
느려서 아름답고, 불편해서 즐거운 곳이 있다. 이름마저 여유로운 ‘슬로시티’가 그런 곳이다. 담양 삼지천마을, 장흥 유치면,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이상 2007년말), 하동 악양면(2009년 2월) 등 5곳의 마을이 국내 최초는 물론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됐다. 화려한 볼거리가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이 곳에서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마을의 문화와 역사가 있고 도시의 속도를 벗어나 고향의 속도에 기꺼이 보폭을 맞출 수 있다.
올여름 휴가는 담양 삼지천 마을의 토담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보거나 신안 증도의 짱뚱어 다리를 바다 건너듯 건너보는 것은 어떨까. 하동의 너른 들판이, 완도 청산도의 흥겨운 노랫가락이 당신에게 어서 오라 손짓한다.
■ 담양 삼지천마을
<코스>삼지천마을(창평면사무소-고재선가옥-고재환가옥-고재욱가옥)-창평시장-메타세콰이어길-삼천교-창평천길-창평고-게이트볼장-창평초교(5~6㎞)
월봉산에서 발원한 월봉천과 운암천, 유천 등 세 개의 물줄기가 마을로 모여 흐른다고 해 삼지천이라 불렸던 담양 창평면 삼지천마을엔 아쉽게도 수십년 전의 마을천 복개공사로 물줄기가 땅밑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하지만 항일운동, 인재양성 등에 앞장섰던 창평 고씨 자손들의 고고한 정신이 500년 마을의 역사와 함께 3,600m 길이의 토석담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깊게 흐르고 있다.
창평 고씨 집성촌인 삼지천 마을에는 고재환(고광표) 고가, 고재욱 고가, 고재선 고가 등이 남아 있어 100여년전 한옥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소독을 위해 입구와 뜰에 낮게 세워진 굴뚝부터 언제나 양반집 방 한 켠을 차지했던 검은 집(관), 나무가 습기를 먹지 않도록 기와를 대 놓은 기둥 등 마을 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한옥의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보지 않게 된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마을 토담길을 걷다 보면 시간도 걸음도 속도를 줄인다. 마을 곳곳에는 ‘창평엿’이라고 쓰인 낡은 간판을 내건 예닐곱집이 있다. 임금에게 진상했던 창평엿은 오랜 세월 이 마을 사람들의 생계수단이었다.
마을 입구 면 사무소에서는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해준다. 돌담길을 따라 자전거로 둘러봐도 좋고 면 사무소에 미리 해설사와 동행을 예약하면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토담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매월 둘째주 토요일에는 마을 사람들이 지역 특산물과 골동품 등을 내다파는 달팽이시장을 운영하는데 가장 천천히 달리는 사람 4명을 뽑아 시상하는 ‘달팽이 자전거 경주대회’도 함께 열린다.
■ 신안 증도
<코스1, 해송 삼림욕코스>갯벌생태전시관(엘도라도리조트)-우전해수욕장-짱뚱어다리(7㎞)
<코스2, 자전거 일주코스>버지선착장-소금박물관-태양광발전소-증도초교-해송공원-갯벌체험장-짱뚱어다리-파출소-면사무소-염전체험장(16.4㎞)
신안 증도 버지 선착장을 지나기 무섭게 새하얀 소금을 머금은 태평염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2배에 이르는 462만㎡(140여만평)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꽂히고 소금 결정을 긁어모으는 염부들의 대파질도 덩달아 바빠진다. 신새벽부터 해질 무렵까지 쉼 없이 일하는 염부의 땀과 바람, 태양이 태평염전의 소금을 빚어낸다. 천혜의 자연 조건 덕에 국산 천일염의 명성을 지켜오고 있는 태평염전은 광활한 들판에 수십 개의 소금밭과 소금창고가 3㎞나 펼쳐져 있어 새벽녘이나 해질녘에 장관을 이룬다.
태평염전 입구에는 소금 박물관이 있다. 지난 2007년 꾸며진 이 박물관은 고구려 주몽이 티베트 소금산으로 소금을 구하러 갔다는 일화나 을불(고구려 15대 미천왕)이 최초의 소금 장수였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소금 이야기들을 전한다.
버지 선착장 반대편으로 가면 송ㆍ원대 해저유물 발굴 해역이 나온다. 지난 1975년 증도면 방축리에서 서북 방향으로 2,750m 떨어진 곳에서 한 어부가 그물에 걸려나온 청자 도자기를 발견해 신고했는데 그 도자기가 중국 원나라 시대 보물로 밝혀지면서 9년 동안 11차례에 걸쳐 유물 발굴이 진행됐다. 현재까지 발굴된 도자기 2만661점 등 총 2만8,000여점의 유물은 13~14세기 중국 남송과 원대의 도자기 연구 사료로 인정돼 증도는 보물섬이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증도 여행의 백미는 갯벌체험이다. 갯벌에 서식하는 짱뚱어라는 망둑어과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짱뚱어 다리(470m)는 60만평 갯벌 위에 나무 상판을 놓아 만든 것으로 만조 때 다리를 건너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다.
■ 완도 청산도
<코스>유채꽃밭과 청보리밭(영화 ‘서편제’,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장)-당리 돌담길-읍리지석묘-범바위(4㎞)
푸르른 보리밭을 막아선 돌담길을 따라 누렁소와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완도항에서 뱃길로 45분 거리에 있는 청산도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섬은 영화 ‘서편제’, 드라마 ‘봄의 왈츠’의 촬영지로 알려진 곳. 서울에서 완도까지 차로 5시간 달린 것도 모자라 다시 페리호를 타고 50분을 더 들어가야 닿는 섬이다.
영화 ‘서편제’에서 아들 동호(김규철)의 북장단에 맞춰 유봉(김명곤)과 딸 송화(오정해)가 어깨를 들썩이며 진도 아리랑을 불렀던 당리 황톳길(돌담길)은 청산도의 하이라이트다. “노다 가세 노다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나 가세” 굽이굽이 길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구성진 노랫가락이 들리는 듯하다.
청산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보리밭뿐만이 아니다. 섬 어디건 구들장논과 다랑이논, 돌담이 어우러져 있다. 구들장 논이란 구들을 깔듯 논 바닥에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만든 논으로, 흙이 귀한 섬마을 사람들이 한줌 흙마저 아껴 농사를 지어야 했던 생존 방식이다. 그들에겐 가난과 배고픔을 이기려는 삶의 지혜였지만 외지인의 눈에는 아름답기만한 풍경이다.
청산도에선 가만히 귀기울여 보는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넉넉해진다. 조용하고 느린 이 마을에서 듣는 보리를 흔드는 바람소리, 파도에 진산마을 몽돌 갯돌밭이 ‘차르르’ 움직이는 소리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 장흥 우산리ㆍ반월리 마을
<코스, 자전거길>장흥댐(심천공원, 물문화관)-수인산성-월암마을 유치자연휴양림(15㎞)
서쪽으로는 ‘남도답사 1번지’ 강진, 동쪽으로는 ‘차의 고향’ 보성과 이웃해 오랫동안 조연급에 머물던 장흥이 슬로시티 지정을 계기로 ‘청정 고장’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이제 장흥 하면 장수풍뎅이와 장수하늘소, 표고버섯, 지렁이 등 청정지역을 상징하는 생물들이절로 떠오른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마을 중 한 곳인 유치면 반월리는 표고버섯 산지로 유명한데 표고버섯 자목을 활용해 장수풍뎅이를 사육하면서부터 장수풍뎅이 마을로 알려지게 됐다. 장수풍뎅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도시 아이들에게 풍뎅이 유충의 한살이를 지켜보는 체험은 값지다. 최근들어 도시 어린이들에게 장수풍뎅이 관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매년 7월말 ‘장수풍뎅이 축제’를 열고 있다.
장평면 우산리는 지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과 유기농 채소가 자랑거리다. 폐교를 활용한 지렁이 생태 학습장은 일반에 공개돼 있어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지렁이의 생태와 정화능력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비자나무 숲과 자생 녹차 밭이 있는 가지산, 송광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보조선사가 창건한 보림사 등 장흥군 주변 관광지도 돌아볼만하다.
■ 하동 악양면
<코스>섬진강평사리공원-평사리들판-최참판댁-악양루-섬진강변-화개장터(18㎞, 화개길 연계시 31㎞)
지리산에 포근히 안긴 산 아래 너른 들판이 바람에 춤을 춘다. 들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는 악양천이 내는 물 소리와 고즈넉한 풍경에 어느 순간 걸음이 멈춰진다. 하동의 백미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는 화개면 벚꽃터널을 꼽을만하지만 느림의 미학을 찾아 떠난 여행자에겐 섬진강변과 평사리들판,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면도 안성맞춤이다.
악양면은 문학의 고장이다. 드넓은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상평마을 언덕에 오르면 26년간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했던 고 박경리 선생이 된듯 소설 속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다. 언덕 위에는 2002년 소설 속 장소를 그대로 재현한 최참판댁이 10여채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지난 5월에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과 화개면 일원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의 토지 길’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하는 문화생태탐방로로 선정되면서 ‘걷기 중심 코스’로 거듭났다. 이곳 들판은 소설의 배경지로는 물론 풍광까지 뛰어나 4월말에는 바람결에 따라 몸을 흔드는 드넓은 청보리밭을, 10월에는 눈부신 황금들녘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생태탐방로 지정을 기념해 섬진강 생태체험, 영호남화합 줄배타기 체험, 소설 ‘역마’에서 ‘토지’까지 문학탐방, 화개장터 ‘역마살’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될 예정이다.
● 두 발로 느껴보는 이 땅의 소중함 '문화생태 탐방'
길따라 걷다보면 소설 '토지'의 잔영이…
도보 여행이나 자전거 여행 등 이왕이면 탄소 배출이 덜 되는 여행을 실천하면서 환경 보호에도 일조할수 있는 녹색 생태 관광(그린 투어리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트레킹 코스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의 토지길, 고인돌과 질마재 따라 100리길 등 7곳을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시범 사업지로 선정했다. 아직까지 표지판이나 쉼터 조성이 이뤄지지 않은 곳도 있긴 하지만 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면서 역사 기행과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올 휴가에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집 한 권이나 고 박경리 선생이 쓴 대하소설 ‘토지’를 품에 안고 문학작품의 배경이 됐던 길을 따라 걸으며 여유를 즐기는 색다른 도보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고인돌과 질마재 따라 100리길(전북 고창)
<코스> 고인돌유적-오베이골 생태습지-운곡저수지-인천강줄기-풍천-질마재-미당시문학관-좌치나루터-하전갯벌체험장-소금굽는벌막-소금샘-낙조대-도솔암-참담암-선운사(40㎞)
고창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던 미당 서정주 시인과 그를 키운 질마재의 코끝 찡한 솔바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당의 대표 시집인 ‘질마재 신화’는 고향으로 회귀하고 싶은 정신적 토대 위에서 창작된 작품. 미당의 고향 마을인 선운리에 있는 고갯마루인 질마재는 고개 모양이 ‘길마(수레를 끌 때 말이나 소 등에 안장같이 얹는 제구로 ‘질마’는 구개음화가 안된 상태)‘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 남짓한 질마재는 미당이 서울로 길을 떠날 때면 넘었던 고갯길인 동시에 이 지역 사람들이 외지로 소금이나 생선을 팔러 나갈 때 이용하던 길이기도 했다.
고창의 고인돌 유적지는 세계문화유산(2000년)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만 국내 절반이 넘는 2,000여기의 고인돌이 산재하고 있으며 한강 이남에 북방식 고인돌(일명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오베이골(다섯 개의 길로 나뉜 골짜기란 뜻의 전라도 사투리) 탐방로에서는 동양 최대 고인돌인 운곡고인돌(약 300톤)을 만날 수 있다.
소금굽는 벌막과 소금샘은 천년고찰인 선운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검단선사가 먹을 것이 없어 도둑질하던 일당에게 소금물을 끓여 소금을 만드는 화염 제조법을 가르쳐준 곳이다. 또 국내 최대의 바지락 생산지답게 고창의 광활한 하전갯벌에서는 갯벌 축구, 바지락 잡기 등 다양한 갯벌 체험도 가능하다.
■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전남 강진ㆍ영암)
<코스> 다산수련원-다산초당-백련사-철새도래지-사의재-김영랑 생가-무위사-태평양 녹차밭-월남사지석탑-신월(누릿재)-월출산자락 웰빙기도로-도갑사-영암 구림마을(40㎞)
전남 강진은 조선 시대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다산 정약용이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남긴 역사적인 곳이다.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동문 밖에는 다산이 1801년 겨울 강진에 유배와 4년간 머물렀던 주막집인 동문매반가가 있다. 다산이 머물렀던 주막집 골방은 당시 그가 지은 이름인 ‘사의재(생각, 용모, 언어, 행동 등 4가지를 올바로 하는 자가 거처하는 집)’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데 지금도 도토리묵과 파전, 동동주를 맛볼수 있다.
강진만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에서 다산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초당에는 정석, 다조, 약천, 연지 등을 칭하는 ‘다산사경’이 있는데, 정석(丁石)은 ‘스스로 돌과 같이 굳건하게 정신을 지키자’는 다짐을 하며 다산이 돌에 직접 정으로 쪼아 새긴 것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가는 800m 오솔길에서는 중간 중간에 시원하게 펼쳐진 강진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산은 이 길을 오가면서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지적 교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백산 자락길(경북 영주, 충북 단양)
<코스> 소수서원-순흥학교-죽계구곡-초암사-달밭골-비로사-삼가호-금선정-정감록촌-풍기온천-희방사역-죽령옛길-단양 용부원리-죽령역-대강면소재지(34㎞)
순흥은 ‘피끝’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550여년 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유배되던 해 금성대군이 순흥으로 유배돼 왔다. 금성대군은 어린 조카를 위해 복위운동을 벌였고 그와 함께 세조에 저항한 영남의 선비들이 죽음을 당하면서 그들의 피가 죽계를 따라 이 곳까지 흘러 ‘피끝’이라 불렸다고 한다.
죽계구곡은 소백산 계곡 중 가장 큰 계곡에 속한다. 월전계곡을 빠져 나온 개울물이 초암사 앞에서 제1곡을 이루고 배점마을 삼괴정을 조금 못 미치는 제9계곡에 이르기까지 약 2㎞ 구간에 분포돼 있다. 한 여름에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가 싹 가신다.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를 보기 위해 걸음을 내딛던 죽령 옛길도 트레킹 코스로 손색이 없다. 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룩한 지점에 있는 죽령(해발 696m)에 올라서면 서쪽으로 단양, 동쪽으로 영주 땅이 시야에 들어온다. 죽령 옛길은 지난 41년 일본이 중앙선 철도를 놓고 터널을 뚫으면서 인적이 끊겼으나 99년 중앙선 희방사역에서 죽령 주막이 있는 언덕마루까지 2.5㎞ 구간이 자연탐방로로 복원되면서 울창한 숲과 나무, 산새와 다람쥐들을 벗하며 걸을 수 있게 됐다.
■ 강화 둘레길(인천 강화)
<1코스, 역사돈대길> 성공회 강화성당-고려궁지-강화산성 북문 대산리길-연미정-강화역사관-용진진-용당돈대-광성보-초지진(30㎞)
<2코스, 심도기행길> 온수사거리-전등사-삼랑성-온수동길-이규보묘-곤릉-석릉-가릉-정재두묘-이건창묘-건평나루-망양돈대-외포리터미널(22㎞)
‘심도기행(沁都紀行)’은 강화도 선비 화남 고재형(1846~1916년)이 강화도 200여 마을의 명소를 직접 방문해 각 마을을 주제로 한시를 짓고 그 아래에 각 마을의 유래와 풍광ㆍ인물ㆍ생활상 등을 설명한 기행문이다. 고재형은 1906년 봄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을 출발해 강화도 기행을 떠났다. 1년여동안 400㎞를 걸어 100여 마을을 돌아보고 256수의 칠언절구 시집 ‘심도기행’을 남겼는데 그의 아호를 따 ‘화남길’로도 불린다.
강화 둘레길은 강화산성에서 해안가의 53개 돈대를 잇는 탐방로와 고려왕릉이 있는 진강산 둘레길 등 55㎞ 구간이다. 특히 1코스와 2코스의 연결점인 광성보에서 온수사거리까지 6.2㎞ 구간에는 강화 해안 자전거 도로가 나 있어 걷기 뿐아니라 자전거 하이킹도 가능하다. 건평나루ㆍ건평돈대ㆍ망양돈대ㆍ외포선착장 등으로 이어지는 길은 서해안의 절경 코스로 저 멀리 석모도를 바라보며 걷다 붉은 노을을 만날 수 있는 일몰의 명소다.
■ 영덕 동해 블루로드와 관동대로를 따라가는 삼척 옛길(경북 영덕, 강원 삼척)
<1코스> 영덕 강구항-풍력발전소-해맞이공원-석리-대게원조마을-죽도산-괴시전통마을-대진해수욕장-고래불해수욕장(40㎞)
<2코스> 삼척 근덕면 용화리-절곡-사기촌-소공령-원덕 길곡리-호신리-월천2리-길령재-고포(24㎞)
경북 영덕의 해안은 포항이나 속초에서 바라보는 해안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대부분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내려와 평지 쪽으로 널찍한 해안선이 펼쳐졌지만 영덕은 가파른 벼랑 아래로 해안선이 발달했고 그 사이로 마을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자동차 드라이브보다 두 발로 걷는 트레킹이나 자전거 하이?코스가 어울린다. 해맞이 공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 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책로와 전망대, 갈대숲이 어우러진데다 음악과 조각이 함께 하는 휴식 공간이다. 영덕은 바다 말고도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고장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고색창연한 한옥들. 예로부터 대갓집과 문중의 종가들이 즐비해 ‘작은 안동’이라 불렸으며 특히 괴시리 전통마을의 규모가 크다.
관동대로는 서울 흥인문에서 출발해 대관령을 넘어서 삼척 소공령을 지나 울진 망양정에 이르는 옛길이다. 이중 삼척구간은 동해 바다의 절경을 가까이서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국도 7호선이 개설되기 전에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던 옛길 등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옛길 주변에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황희 정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관동 지방 백성들이 세운 소공대비가 있으며 진상미역 생산마을(고포 마을) 등 역사문화 및 자연 체험 명소들이 많다.
■여강을 따라 가는 역사문화체험길(경기 여주, 강원 원주)
<코스> 여주 영월루-은모래금모래 유원지(황포돛배체험)-흔암라 선사유적지-아홉사리-도리마을-삼합리-부론성당-법천사지-흥원창-섬강교-자산-바위늪구비-강천리-목아박물관-신륵사-여주터미널(45㎞)
여주터미널에서 출발해 ‘달을 맞는 누각’라는 뜻을 가진 영월루를 시작으로 남한강(여강)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제방을 쌓기 전 모래에서 은빛이 난다고 해서 은모래금모래라고 부르는 강변유원지를 지난다. 남한강과 연양천 합수지점에서 복원된 황포돛배를 탈 수 있다. 현재의 황포돛배는 한양과 중부권을 이어주던 수상교통 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재현한 것이다.
도리마을은 마을을 향해 난 도로가 하나뿐이어서 들어온 길을 되돌아 나가야 했으므로 ‘되래’ 혹은 ‘도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전해진다. 삼합리는 세 강(남한강, 청미천, 섬강)과 삼도(강원, 경기, 충청도)가 한 곳에서 만났다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