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제기준으로 가는 길

주5일 근무제을 둘러싸고 2년간에 걸친 논의에도 불구하고 노사정위원회가 합의를 끌어내지 못함에 따라 정부가 단독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달 안으로 그동안 논의된 내용과 공익안을 중심으로 입법안을 마련하고 내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주5일 근무제에 대해 정부가 확고한 방침을 정하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노동계와 재계가 각기 입장을 반영하기에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계는 가능하면 기존의 임금과 근로조건등에서 손해를 입지 않으면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고 재계는 주5일 근무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비례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제기돼온 시기상조론도 한풀 꺾이고 있는 형국이다. '노는 것을 국제기준에 맞추려거든 일하는 것도 국제기준에 맞추자'는 볼멘소리가 없지 않지만 대체로 주5일 근무를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주5일 근무가 되면 근로자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관광ㆍ레저 등을 비롯한 서비스산업이 발달해 경제적으로 득이 많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도 안되는 형편인 우리가 우리보다 소득이 몇배나 많은 선진국과 같이 일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은 워크홀릭세대들의 막연한 불안감쯤으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현실적으로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금융권과 공공 부문에서 주5일 근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현실이 앞서가고 제도가 뒤따르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쯤되면 주5일 근무제 자체에 대한 논란보다는 가장 합리적인 제도를 만드는 일에 머리를 맞대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가 아닌가 싶다. 다른 제도개혁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제기준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에 관한한 국제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준은 없다. 근로시간과 행태는 나라마다 다르다. 법정근로시간도 다르고 초과근무에 대한 할증요금제도 다르다. 그러니까 우리의 현실과 경제적 부담능력이 중요한 변수로 고려돼야 한다. 이런면에서 적어도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의 연간 총 휴일수가 경쟁국을 넘어서는 것은 문제가 있어 뵌다. 두번째 쟁점인 휴일수 증가에 따른 임금보전과 도입시기의 경우 중소기업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불능력에 여유가 있거나 코스트 부담을 중소기업에 전가할 여지라도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일하는 시간은 줄어드는 데 반해 임금수준이 같거나 오히려 올라가는 경우에 치명적인 타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값싼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의 경우 현실적으로 주5일 근무제가 되더라도 실근로시간이 줄어들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정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할증료 등으로 인해 임금부담이 늘어날 공산이 크다. 저임금에 의존하는 산업이나 기업을 언제까지 붙둘고 있어야하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적어도 새로운 여건에 적응하거나 업종전환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박봉에다 열악한 근무환경이지만 소중한 일자리로 여기는 근로자들이 의외로 많다. 주5일 근무제와 관련, 흔히 선진국기준 또는 국제기준을 말하지만 국제기준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로컬기준이라고 다 나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노동제도와 노사관계는 국제기준과 로컬기준이 뒤섞여 있어 딱잘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가령 복수노조가 활성화되지 않아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일부의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노동무임금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거나 노조전임자임금을 기업이 부담하는 관행, 노사협약을 공권력으로 강제하는 것 등은 국제기준에는 안 맞지만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제도들이다. 국내 여성 근로자들이 누리고 있는 생리휴가도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제도이다. 국제기준이 아전인수격으로 이용돼서는 곤란하다. 주5일 근무제는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도 중요하다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논설위원(經營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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