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중견기업 가업승계, 富 아닌 경영책임·기술 대물림으로 봐야

과도한 상속세로 회사 넘어가지 않게 상속공제 확대 필요

통상임금은 소송·파업보다 대화 통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

히든챔피언 키워야 일자리 늘어 … 규제 풀고 과감하게 지원을


"대기업은 총수 지분이 얼마 안 되지만 중견기업은 경영주들이 지분을 거의 다 갖고 있습니다. 책임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가업승계를 하지 말고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라고 하는 것은 기업 환경과 특수성을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올해는 가업승계를 비롯해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같은 중견기업의 '신발 속 돌멩이'를 제거하는 데 힘을 쏟아 부을 생각입니다."

9일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에서 만난 강호갑(59·사진) 회장은 가업승계에 대한 미흡한 지원과 사회적 반감에 대해 아쉬움부터 드러냈다. 중견련 회장에 취임한 지 꼬박 1년을 맞은 강 회장은 올해도 가업승계, 일감 몰아주기 과세, 노사갈등 등 중견기업의 경영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전력질주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강 회장은 "가업승계 지원을 늘리지 않는다면 경영권 방어라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과도한 상속세로 회사가 넘어가게 된 농우바이오를 사례로 들었다.

그는 "잘 알다시피 종자산업 전문업체인 농우바이오는 창업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아들이 회사를 물려받게 됐는데 1,000억원 넘는 상속세가 나와 현금도 없고 대출도 안 돼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결국 회사를 팔게 됐다"고 혀를 찼다.

올해부터 가업승계 상속공제 대상 기업이 매출액 3,000억원 이하 중견기업으로 확대됐지만 이조차도 강 회장은 턱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업승계 공제 대상 기업이 3,000억원으로 늘어 중소기업은 혜택을 받게 됐지만 여전히 중견기업에는 부족하다"며 "명품 장수기업을 육성하려면 독일식 가업승계 제도를 도입해 공제 대상을 확 늘리고 가업승계 이후에도 정책적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사회적으로도 기업의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 경영에 대한 책임과 기술의 대물림으로 보고 고용창출과 기술 고도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측면으로 봐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최근 통상임금 문제도 중견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강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들이 법을 어기고 줄 돈을 안 준 것도 아닌데 노조에서 일단 소송부터 걸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법이나 통상임금 등 기업이 잘못한 게 있다면 고쳐야 하는 게 맞지만 그전에 각 주체들이 모여 대화를 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게 먼저"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업체들이 통상임금을 산정 중이고 데이터가 나오면 그에 맞춰 고쳐가면 되는데 그전부터 극단적으로 소송하고 파업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자동차 차체 부품과 금형을 제조하는 신영그룹을 운영하는 강 회장은 차 업종의 경우 통상임금이 적용되면 타격이 크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자동차 업종은 통상임금을 적용하면 시급자들이 많아 임금상승률이 상당히 높아지는데 한 업체의 경우 계산해보니 전체 임금이 22%나 상승하는 것으로 나왔다"며 "그렇다고 제품 가격을 올리면 제품 경쟁력이 떨어져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2월 중견련 회장직을 맡게 된 강 회장은 지난 1년 중견기업 특별법 제정을 가장 큰 업무 성과로 꼽았다. 중견기업계는 이전부터 줄곧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분법적 분류 속에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소외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산업발전법에 처음으로 중견기업 개념이 들어가긴 했으나 이마저도 너무 광범위해 제대로 된 중견기업 정의는 사실상 전무했다.

이에 강 회장은 취임부터 특별법 제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6차례에 걸쳐 국회에서 릴레이 정책토론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정치권과 정부 부처에 끊임없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난해 12월26일 중견기업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

강 회장은 그날 눈물을 흘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12월26일은 취임한 지 꼬박 10개월이 되는 날로 중견기업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순간 눈물이 났다"며 "국회가 싸움만 하는 줄 알았는데 국회의원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감대를 이뤄 여야 없이 중견기업을 키워야겠다고 나선 것은 정말 감동적이고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머리를 맞대면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고 가장 힘든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로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었다"고 그날의 감격을 되새겼다.

그는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고 말을 이었다. 법 제정은 시작일 뿐이고 지원방안 등 내용을 채워 중견기업이 성장해 우리나라 경제를 이끄는 것은 지금부터라는 얘기다.

강 회장은 "법이 만들어졌으니 시행령에 대책도 만들어야 하고 올해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 될지 눈에 선하다"면서도 "중견기업 특별법은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으니 멋지게 잘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해야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세계에 흔하지 않은 중견기업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슈가 되고 육성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특이한 국내 산업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국가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중화학공업 등 규모가 큰 산업을 육성하다 보니 중소 협력업체들이 많이 생겼고 이들이 현재 중견기업이 됐다는 것. 또 이들 기업을 육성해야 우리나라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가 성장하기 전만 해도 중견기업은 없었는데 우리나라가 1960년대 중화학공업을 비롯해 큰 산업을 키우고 수출지향 정책을 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품과 소재,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소 협력업체들이 많이 생겼고 이들이 수십년 동안 열심히 일해 강해져 중견기업이 됐습니다. 여전히 중견기업들은 독보적인 성공 신화를 쓰며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 과정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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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러한 중견기업들이야말로 우리나라 경제의 희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 회장은 "세계에 3,000여개의 히든챔피언이 있는데 그 중 독일이 1,500개 정도고 일본이 300여개, 우리나라는 23개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300개 정도의 히든챔피언이 나오면 국민소득 4만∼5만달러는 금세 달성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대기업은 더이상 일자리는 늘리기 힘든 만큼 중견기업이 성장해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중소기업도 더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중견기업이 할 일이 많은데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와 기득권의 이익에 따라 제도와 법령 등이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강 회장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중견기업들이 글로벌 전문기업이 돼야 우리 경제생태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하는데 이에 비해 정책·제도·법령이 못 따라오고 뒷받침돼주지 못한다"며 "창조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으로 기업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보다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 부처나 이해집단 또한 기득권을 내려놓고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강 회장은 "중견련을 어엿한 경제단체로 키우겠다"며 "올해 중견련은 중견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경제 중심단체로 역량을 키우고 법정단체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중견기업이 수는 적지만 고용이나 수출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경제의 허리를 맡고 있고 앞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도 활성화해 산업 생태계에서 제 역할을 다하도록 할 테니 두고 봐달라"고 당부했다.

He is …

△1954년 경남 진주 △1973년 진주고등학교 △1978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경영학 학사) △1988년 미국 조지아주립대학교 회계학과(회계학 석사) △1989년 ㈜부영사 부사장 △1994년 미래엔지니어링 대표 △1999년 신영그룹 대표이사 △2008년 APEC기업인자문위원회(ABAC) 자문위원,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고위자문위원 △2009년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자문위원, 해외진출기업지원 특별위원 △2011년 현대기아협력회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미국 해외민간대사 △2012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자문위원, 글로벌전문기업 포럼 회장 △2013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지구 140바퀴 돌며 해외 현장경영 … 지칠줄 모르는 '에너자이저'

■ 강 회장은

하루 4시간도 안자고 업무 체크

"어제도 서너 시간밖에 안 잤습니다. 낮에는 회사 일과 중견기업연합회 일을 했고 새벽에는 외국은 낮이니까 전화통화를 하면서 해외 쪽 일을 처리했습니다."

과도한 업무로 지칠 만도 한데 강호갑 회장은 인터뷰 내내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그의 말과 몸짓에는 언제나처럼 힘과 열정이 묻어났고 얼굴에는 여유있는 미소가 가득했다.

강 회장의 강행군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경제단체의 수장이자 신영그룹의 최고경영자인 그는 하루 평균 4시간도 채 안 자고 업무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이 있어서 일을 하는데 밤낮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실제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에 따르면 강 회장은 새벽에도 할 일이 있거나 체크할 것이 있으면 수시로 임직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직접 발로 뛰며 현장 중심 경영을 펼치고 있는 그는 지금도 1년 중 3분의1을 해외에서 보낸다. 2011년 이전에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그의 연간 항공사 마일리지는 평균 20만마일(32만㎞)에 이르고 이는 거리로 지구 둘레의 8바퀴에 달한다. 사업을 시작한 25년 전부터 따지면 마일리지는 총 350만마일로 이제까지 무려 지구를 140바퀴나 돈 셈이다.

강한 추진력만큼 빠른 업무 처리 속도와 꼼꼼함으로도 정평이 자자하다. 강 회장은 일일이 수첩에 업무 내용을 일자·시간별로 자세하게 적어놓고 하나씩 체크해가면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루가 꼬박 걸려도 하기 힘든 수년치 신문기사 스크랩을 오전에 지시하고 오후에 바로 확인하는 등 임직원들에게도 빠른 일 처리를 당부하고 있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강 회장 스타일에 임직원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만큼 업무 성취도가 높아 불만보다 보람이 더 크다. 지난 1999년 강 회장이 처음 신영 대표이사에 취임했을 때 임직원들은 강 회장이 첫날부터 업무를 강력하게 밀어붙여 힘들고 고생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이상으로 회사가 성장해 성취도와 만족도도 크다는 후문이다.

사진=이호재기자

/대담=이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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