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도그마에 빠진 환경정책] <상> 산업현실 도외시한 '깜깜이 규제'

배출권거래제에 화평·화관법까지… 위기의 기업들 '설상가상'


"부담 커지면 생산 줄일판" 철강·발전·석화 직격탄

관련 전문지식 부족하고 알아도 대책 마련 어려워


중소기업은 아예 속수무책

정부 요구 서류 꾸미느라 R&D시기도 놓쳐 속앓이


재계는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2015년을 운명의 해로 여기고 있다. 글로벌 경제회복세가 예상 밖으로 신통치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제조업 전(全) 분야에서 턱밑까지 치고 들어와 생존이 어려운 지경으로 몰리는 한계기업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삼성과 한화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자발적 '빅딜'에 나서고 재계 곳곳에서 인수합병(M&A) 바람이 부는 것도 이런 절박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기업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하지만 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정부가 여전히 곳곳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점은 문제로 지목된다. 특히 환경규제에 따른 기업의 '에코 코스트(eco cost·환경비용)' 증대는 정부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숙제로 꼽힌다. 내년 시행되는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의 경우 기업 부담이 12조7,000억원에 이른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분석도 나왔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한국 경제가 제조업 중심에서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으로 발돋움하도록 집중해야 할 시점에 정부가 기업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를 비롯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 등을 대표적인 환경규제로 지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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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발전·석유화학업 수익 직격탄=철강업체 A사는 오는 2015~2017년 3년 동안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로 발생하는 부담금이 약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업종의 특성상 막대한 에너지 사용이 불가피한데 정부가 배급한 온실가스 배출 '티켓'은 예상 배출량에 크게 미치지 못해 부족분을 돈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 고위관계자는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로 인한 부담금이 만약 예상치를 벗어나면 결국 제품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배출권 거래제가 경영의 최대 리스크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에코 코스트 발생의 '주범'으로 꼽히는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에 대해 기업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제기한다.

우선 배출권 할당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애초에 기업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목표를 세워두고 밀어붙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종환 일신회계법인 부회장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인구 증가율, 산업구조 변화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이 2020년 배출량을 예측해두고 여기서 30%를 무조건 감축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일반 대기오염물질은 탈황설비 같은 시설에 투자해 배출을 줄일 수 있으나 온실가스는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기 전에는 사실상 근원적인 대책이 없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고소비 업체들은 2000년대 이전부터 친환경 분야에 투자를 진행해왔는데 온실가스 이슈는 생산량 자체를 줄이지 않는 한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공급 예측 실패로 배출권값이 지나치게 급등해 시장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화평법·화관법 불확실성에 중소기업 속수무책=내년 1월1일 시행되는 화평법·화관법 역시 과징금 규모 등이 상당히 완화되기는 했지만 상당한 폭발력을 가진 규제로 지목되고 있다. 이 법들은 화학물질과 관련한 각종 성분정보와 관리를 까다롭게 만든 법이다.

화학업계는 특히 대기업보다도 중소기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벌이는 대기업은 이런 규제에 어느 정도 훈련이 돼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주로 엔진오일을 수입해 판매하는 중소기업 B사는 최근 수입창구가 닫힐 위기에 처했다. 화평법에 따라 윤활유 제조·수입업체는 제품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해외 수출업체가 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서다. 엔진오일은 첨가제로 무엇을 넣느냐가 '영업비밀'로 꼽힌다. 이 업체는 수출회사와 협상에 들어갔으나 결과에 따라서는 상당한 손실을 볼 가능성도 있다.

이지은 화학물질관리협회 부회장은 "현재 중소기업들은 화평법·화관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설령 알아도 기술인력이 부족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환경부 지시로 현장교육을 추진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기업들이 정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꾸미느라 연구개발(R&D) 시기를 놓칠 수 있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이 밖에 정부가 2020년까지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주행거리 1㎞당 97g 이하로 내리도록 규정한 행정고시도 업계를 압박하는 환경규제로 꼽힌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제시안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엄격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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