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술, 문턱 낮추고 대중 향하다

"그들만의 리그 벗어나 저변 넓히자"… 중견작가 작품 200만원 균일가 '완판'

"전세계 수십 점뿐" 복제상품도 기획

대학 건물·강의실에 작품 상설 전시… '캠퍼스뮤지엄' 프로젝트도 인기몰이


돈 가진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돼온 미술계가 대중에게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수천만~수억원을 호가하는 작품 가격 때문에 문턱이 높았던 미술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유명작가의 그림을 200만원 균일가에 구입할 수 있는 전시를 열고 유명 작품의 디지털프린트지만 한정수량만을 고급스럽게 제작해 컬렉터 입문을 유도하기도 한다. 아예 대학 강의실에 미술관처럼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무엇보다 미술시장 발전을 위해서는 저변을 넓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에서다.


◇중견작가 작품당 200만원 기획전시에 사실상 '완판'=미술 컬렉터층을 넓히자는 취지로 지난 1991년에 시작된 '작은 그림 큰마음 전'은 100만원 균일가로 시작됐다. 2008년 500만원까지 올랐던 작품은 경기가 어려워진 2009년 이후 200만원대에 선보이고 있다.

전시에 내놓은 그림은 2~10호(1호는 우편엽서 크기) 소품 100여점이다. 먼저 행복한 가족 나들이 풍경을 그린 김덕기의 '가족 - 자전거 타고 나들이 가기', 두껍게 겹쳐 칠한 물감을 다시 칼로 깎아내 미로 같은 모양을 만들어낸 김태호의 '내재율', 그릇에 담긴 얼음과 과일·식물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박성민의 '아이스 캡슐' 등이 포함됐다. 또 사과 그림으로 잘 알려진 윤병락의 '가을향기', 여성의 치맛자락이 겹쳐지며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이호련의 '오버래핑 이미지', 명화의 인물과 구도를 차용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한만영 등의 작품도 인기를 모았다.

노승진 대표는 "보통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화랑으로 사러 오는데 막상 유명 작품은 억대를 호가해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이 기획전은 좋은 작가의 그림을 적절한 가격에 사게 하자는 취지다. 요즘 작가들은 소품보다 대작 위주로 작업하지만 그간의 신뢰와 미술 대중화라는 취지로 설득해 매년 전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초 한 직장인에게 매년 적금을 들어 그림을 산다면서 좋은 기회를 줘 감사하다는 연하장을 받았다고 뿌듯해했다.

◇전 세계 딱 수십 점…한정판 복제상품으로 큰 인기=흔히 판화나 사진 작품에서 말하는 '에디션아트(한정수량의 예술작품)' 개념이지만 수억원대의 유명한 그림을 원화에 가까운 형태로 가까이 두는 방법도 있다.


온오프라인 미술경매 회사인 서울옥션은 2년 전부터 '프린트베이커리' 사업을 시작했다. 쉽게 말해 김환기·장욱진·이왈종 등 유명작가의 허락을 받아 고급스럽게 제작한 복제품을 한정수량만 파는 사업이다.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로 만드는 것은 기존 아트프린트, 즉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명화나 유명 영화 포스터를 액자로 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색이 바래지 않는 특수재질의 종이와 잉크로 인쇄한 그림을 강화아크릴 재질에 압착하는 방식으로 상품의 질 자체를 높였다. 게다가 작품당 제작 개수도 제한해 희소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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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큰 차이가 난다. 작품과 액자 크기에 따라 9만~400만원을 오가지만 시장의 반응이 좋다. 현재까지 유명작가 100여명의 작품 200여종을 선보였고 초창기에 내놓은 윤병락·하태임·이왈종·박항률 등의 '에디션아트' 30여종은 이미 다 팔렸다.

서울옥션 프린트베이커리사업의 진재영 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에디션아트 사업은 우선 미술을 대중적으로 더 많이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근 실내 인테리어용으로 부각되면서 백화점이나 서점·갤러리 등은 물론 인터넷쇼핑몰에서도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다음달 삼청동 직영점을 열고 액자뿐 아니라 섬유·세라믹·타일·의류 등으로 상품범위를 넓힌 프랜차이즈 사업도 계획하고 있어요."

나아가 프린트베이커리 사업을 향후 국내 작가의 해외 진출에 활용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를 위해 이달 말 홍콩에서 열릴 서울옥션에서 아시아 지역을 겨냥한 론칭쇼를 진행할 예정이다. "향후 국내 작가를 동남아, 특히 중국에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입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고객을 위해 2년 내 작품을 되팔면 원래 가격의 80%를 보장하는 정책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학 건물·강의실을 미술관으로 '캠퍼스뮤지엄' 프로젝트=노화랑과 서울옥션이 가격적인 측면에서 대중에게 어필했다면 아예 대학 건물과 강의실을 미술관 삼아 전시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있다. 성신여대와 마니프조직위원회가 공동 진행하는 '캠퍼스뮤지엄 군집미술관(Art in the Campus Museum)' 프로젝트다.

대학 강의실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시도다. 세계의 유명 미술관·박물관이 학생을 상대로 창작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는 많지만 작품을 직접 대학 건물에 전시하는 일은 드물다. 상설전시는 더더욱 그렇다.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은 "미래의 사회적 리더들을 육성하는 대학 캠퍼스 안으로 국내외의 명망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들여옴으로써 일상적 전시와는 차별화된 형식"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에 동참한 작가는 모두 11명으로 미술계 원로급 작가들이 뜻을 모았다. 한국미술협회와 신미술회 고문인 김영재(86·서양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전뢰진(86·조각)·민경갑(82·한국화)·유희영(75·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지낸 최만린(80·조각), 세계미술협회 회장으로 일한 제정자(78·서양화), 서울대 미술대 명예교수인 전준(73·조각), 한국화 여성작가회장이었던 류민자(73·동양화), 신미술회 회장을 지낸 구자승(74·서양화), 한국구상대제전(MANIF) 대상을 받은 유휴열(66·서양화),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이었던 최예태(76·서양화)씨 등이 100여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전시는 대학 내 성신미술관과 강의실에서 오는 14일부터 시작되며 향후 작가별로 정해진 교수 중심의 전문인력이 전담 관리하게 된다. 지속적인 연계 프로그램으로 작가와 작품을 미학·미술사적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작품의 보존가치를 극대화하게 된다. 또 작가별 디지털 카탈로그 제작, 지적재산권 보호 대행, 작가 관련 특강과 포럼, 아트비즈니스 등으로 작가는 물론 사후 유가족에 대한 유무형의 지원방안도 모색한다.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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