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도한 입국 대가를 요구하는 탈북 브로커에 의한 피해를 호소하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자신을 한국까지 데려다 준 탈북 브로커에게 써 준 각서는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일까.
법조계에서는 사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탈북자들이 브로커에게 써준 각서는 법률적으로 무효이거나 취소될 수 있으며 이미 지급한 돈도 돌려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차용증으로 불리기도 하는 지급각서는 한국 입국에 대한 대가 및 지급 방식을비롯해 `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어떤 법적 조치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내용을담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다른 탈북자로부터 과도하게 부풀려진 입국 비용에 대한 실상을 전해듣고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각서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
현재 브로커들이 탈북자로부터 받고 있는 한국 입국 비용은 대략 600만원 안팎이다.
민법에 따르면 사기나 협박(강박)에 의한 계약(110조)은 `하자 있는 의사표시'에 해당돼 취소 사유가 될 수 있으며 곤궁한 처지(궁박함), 경솔함, 무경험 등을 악용한 계약(104조)은 불공정 법률행위로 당연히 무효이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인 최재천 의원(열린우리당)은 "탈북자들이 브로커에게 써 준 지급각서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내용의 법률 행위(민법 103조)에 해당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대검찰청의 한 간부도 "일반적으로 법률에서는 범죄와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은 무효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에 입국한 한 탈북자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언제라도 공안에 체포돼 북송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어 브로커들이 요구하는 대로(지급각서를) 써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한변협에서 탈북자 법률구조를 맡고 있는 임통일 변호사는 "브로커들이 탈북자들의 열악한 지위에 편승해 자신에게 유리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했다면 법리적으로 당연히 무효가 된다"고 말했다.
일부 브로커들은 대가에 대한 별다른 언급없이 한국으로 보내주겠다며 탈북자를모집, 은신처에 모아놓고 강압적 분위기에서 각서를 받는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민법 110조나 104조에 따라 취소 또는 무효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견해다.
브로커들은 무연고 미성년 탈북자는 만 20세가 될 때까지 정착지원금을 보호기관에서 예치해야 한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 돈을 받아가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제3자가 탈북 청소년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하고 자신은 지급각서에 따라 돈을 받아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한 판사는 "법리적 측면에서 민법상 성년(20세)에 이르지못한 탈북 청소년들이 브로커에게 써 준 지급각서는 취소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말했다.
엄상익 변호사는 "탈북자들이 이미 브로커에게 돈을 지급한 뒤라고 해도 계약자체가 취소나 무효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