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업무수행 제대로 안했다면 사외이사도 분식회계 책임"

대법, 면책기준 제시 첫 판결

상장사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빠지는 등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회사에서 발생한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할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사법부가 '일 안 하는 사외이사'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물은 것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코스닥 상장사 코어비트의 주식을 샀다가 손실을 입은 투자자 69명이 사외이사를 비롯한 회사 전현직 임원과 외부 감사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이 사외이사 윤모(55)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코어비트 주주들은 지난 2011년 대표이사 박모(46)씨의 100억원대 분식회계로 회사가 상장폐지돼 큰 손실을 입었다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박씨는 비상장사 주식 55만주를 17억6,000만원에 사들이고 재무제표에는 110억원을 지급했다고 기재하는 등 15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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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은 박씨와 서모(51), 강모(42)씨 등 사내이사는 물론 사외이사였던 윤씨에게도 회사의 부실에 책임이 있다며 49억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윤씨가 실제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사외이사로서 실질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며 배상 책임을 면제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다시 뒤집고 윤씨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주식회사의 이사는 재무제표의 승인 등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의 업무를 전반적으로 감시·감독할 지위에 있으며 이는 사외이사라고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윤씨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이사회에 나오지도 않았다는 것은 사외이사로서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사정에 불과하다"며 "사외이사로서 실질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배상 책임을 면제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사외이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은 회사의 잘못된 경영에 따른 책임을 면해줘야 할 사안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경영에 일조한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허위 사업보고서 작성 등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 사외이사의 면책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라며 "사외이사의 경영 감시 역할과 주의 의무를 강조한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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