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비커 속 개구리

개구리 한마리가 비커 속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비커가 달궈지고 있지만 개구리는 변온동물답게 잘 적응한다. 얼마 후 물이 뜨거워졌다. 개구리는 체온을 더 이상 높일 수 없다. 비커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몸은 이미 익어버렸다. 서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는 결국 죽고 만다는 것이 ‘끓는 비커 속의 개구리 신드롬(The Boiling Frog Syndrome)’이다. 은행들은 매년 불어나는 사상 최대 순익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2003년 상반기 1조원을 밑돌던 순익이 1년 뒤에는 3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당기순익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5조원, 7조원을 넘어 올 상반기에는 8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반기에 10조원의 수익이 나도 문제없다는 기세다. 은행의 몸집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커졌다고 자랑이다. 국민은행은 세계 72위로 25계단이나 올랐다. 우리은행은 104위에서 87위로 올랐고, 신한지주와 농협도 각각 88위, 96위를 기록하는 등 100위 안에 국내 4개 은행이 포함됐다. 우리나라는 5,000억달러의 무역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11위의 무역 대국이다. 우리보다 수출 규모가 작은 스코틀랜드의 로얄뱅크는 영업의 23%를 해외에서 하면서 세계 8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 DBS그룹도 세계 69위로 해외 영업이 35%다. 세계 24위인 네델란드의 ABN암로는 해외 영업이 84%로 절반을 넘는다. 스페인ㆍ유럽계 은행들이 해외 영업을 통해 세계 40위 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국내 은행은 어느 한 곳도 해외에서 거둔 수익에 대한 언급이 없다. 8조원의 순익 중 해외에서 거둔 비중이 1%도 되지 않는다. 좁은 땅에서 서로 싸우면서 덩치만 세계적인 플레이어 수준으로 불어났을 뿐 글로벌 경쟁력, 브랜드 파워, 위험 관리기술 등에서는 동네 축구 수준이다. 국내 순익에 안주하다가 시기가 늦어졌다. 우리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아시아시장은 이미 씨티ㆍHSBC 등이 선점했다. 우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뜨거워지는 비커 속에 있는 건 개구리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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